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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구역 성경공부 제 10 과 건강한 가정, 부모와 이웃에게 어떻게 합니까? 읽을 말씀: 출20:12-13 김필곤 목사 (열린교회)
요즈음 우리 사회는 건강한 가정의 질서가 많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생명에 대한 윤리가 땅에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모를 폭행하는 아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여는 죽이는 자식들도 있습니다.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강제로 유산시켜 살해하는 주부도 있고, 병이 들어 고통받는다고 하여 안락사를 정당화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에는 각종 폭력이 춤을 추고 있고 폭력적인 드라마나 영화일수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요? 서로의 의견을 말해 보십시오.
1.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섭취, 적당한 운동, 적절한 휴식이 필수적입니다. 이것 중 한 가지 것만 없어도 건강에 이상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할지라도 가족 혹은 이웃과 인간관계가 원만치 못하면 건강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날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고 그 스트레스로 건강은 온전치 못할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다할지라도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가 온전치 못하면 그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면서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계명을 주셨습니까? 1) ( )한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약점과 허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부모도 실수를 하고 죄인입니다. 사실 존경할 만한 가치가 없는 부모도 상당수 있습니다. 자식을 학대하고 이용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부모의 위치를 봐서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 )에 대한 존경은 집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권위를 존경하는 것을 잘 배우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아무도 나를 다스릴 수가 없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다'라고 하면 큰 문제입니다. 교회와 국가에서 권위를 존경하는 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3) 부모에 대한 나의 관계가 다른 모든 인간 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많은 결혼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배우자가 자신의 부모와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한데서 옵니다. 2. 우리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할 수 있습니까? 1) 어린이로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존경함으로서 공경해야 합니다.(엡6:1; 잠19:26). 우리는 의지적으로 기쁜 맘으로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2) 청소년으로서 부모를 받아들이고 ( )함으로 공경해야 합니다.(잠23:22) 자녀들이 성장함에 따라 부모의 잘못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문제점들과 실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 부모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부모를 받아들여야 합니까? 내게는 다른 선택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들 부모도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사용해서 내가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내 부모를 통하여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부모들이 말씀하는 것을 잘 들어야 합니다(잠23:22). 반드시 부모의 말씀에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부모를 저주해서는 안됩니다(잠20:20). 부모님의 노력에 부모님의 희생에 감사해야 합니다. 3) 성인으로서 부모를 더 ( )하고 버리지 않음으로 존경합니다.(딤전5:8; 딤전5:4) 부모들이 늙어 가면 갈수록 존경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점점 부모는 나에게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갑니다. 오늘날 큰 비극 중의 하나는 자녀들이 자신의 삶에 너무 바빠서 연세 많으신 부모님을 그냥 내버려둔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것은 정부의 일이 아니라 자식들의 일입니다. 한 때 부모는 나를 먹여 주었습니다. 이제 자녀가 음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한 때 부모가 나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제 자식이 부모를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공경이라는 헬라어적 의미는 빚을 갚는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비록 부모가 나를 버렸다고(시27:10)하여도 여호와는 나를 영접해 주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부모를 대하여야 합니다. 3. 부모는 자식을 사랑으로 훈련시켜야 합니다(엡6:4; 마18:6).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불순종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순종은 자유를 수반합니다. 부모를 공경함으로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출20:12; 엡6:3)
4. 마가복음 7:9-13절이 우리에게 교훈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5.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게 되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8,000 번이나 보게 되고 폭행을 가하는 장면을 10만 번 이상 보게된다고 합니다. 매 22분마다 폭력에 의하여 희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제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이 뜻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1) ( )을 죽이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창9:3). 2) 사형 언도를 금하는 말이 아닙니다(창9:6; 레 24:17). 하나님께서는 법 질서를 유지하고 공의를 시행하기 위하여 정부에게 사형시킬 수 있는 법을 위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부를 공의를 시행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3) 전쟁에 가는 것을 막는 말이 아닙니다(전3:8). 성경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만한 것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을 방어하기 위해, 악을 막기 위해 싸우는 것은 정당합니다. 4) ( )방위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출22:3).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위하여 도피성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6.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 )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롬14:7; 욥14:5). 생명의 소유주는 하나님입니다. 그 누구도 자살할 권리가 없습니다. 2) 안락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욥12:10). 죽음이라는 것은 단지 호흡이 멈추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뇌사가 곧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이란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불편하거나 또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끊는 것은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은 방법입니다. 개인적으로 그 누구도 타인의 생명을 합법적으로 중단할 권리가 없습니다. 3) ( )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시139:13-16). 4) 이웃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마5:21-22). 미움의 감정 곧 그것은 살인의 시작입니다(요일3:15). 질투, 복수심, 노를 격발하는 말, 과도한 격정 이 모든 감정은 간접 살인의 현상들입니다. 7. 어떠한 경우든 생명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고쳐야 하겠습니까?
1. 부모님이 나에게 해 주신 것을 기록해 보십시오.
2. 내가 이제까지 부모님에게 해 주신 것을 기록해 보십시오. 내가 더 해 줄 것은 무엇입니까?
3. 가족 중 내가 용서해 주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떻게 하면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1.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씁시다. 양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신 성도는 자식들에게 편지를 써 봅시다.
열린 이야기 소록도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K목사 앞에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다가와 섰습니다. "저를 이 섬에서 살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느닷없는 노인의 요청에 K목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나환자들과 같이 살다니요?" "제발...." 그저 해 본 소리는 아닌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K목사는 무언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모두 열 명의 자녀가 있었지요." 자리를 권하여 앉자 노인은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입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언제 이야기입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그 아이가 열한 살 때였지요." "..."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 아이를 다른 가족이나 동네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로 왔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록도에 나환자촌이 있다는 말만 듣고 우리 부자(父子)가 길을 떠난 건 어느 늦여름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서울을 떠나 소록도까지 오는 여정은 멀고도 힘든 길이었죠. 하루 이틀 사흘... 더운 여름날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걷고 타고 가는 중에 우린 함께 지쳐 버리고 만 겁니다. 그러다 어느산 속 나무 그늘 밑에서 쉬는 중이었는데 나는 문득 잠에 골아 떨어진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바위를 들었지요.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잠든 아이를 향해 힘껏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윗돌이 빗나가 버리고 만 거예요. 이를 악물고 다시 돌을 들었지만 차마 또다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어요. 아이를 깨워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록도에 다 왔을 때 일어났습니다. 배를 타러 몰려든 사람들 중에 눈썹이 빠지거나 손가락이며 코가 달아난 문둥병 환자를 정면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자 아직은 멀쩡한 내 아들을 소록도에 선뜻 맡길 수가 없었습니다. 멈칫거리다가 배를 놓치고 만 나는 마주 서있는 아들에게 내 심경을 이야기했지요. 고맙게도 아이가 이해를 하더군요. "저런 모습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니? 몹쓸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는 길을 택하자." 우리는 나루터를 돌아 아무도 없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신발을 벗어 놓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한발 두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거의 내 가슴 높이까지 물이 깊어졌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내게는 가슴 높이였지만 아들에게는 턱 밑까지 차올라 한 걸음만 삐끗하면 물에 빠져 죽을 판인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내 가슴을 떠밀며 악을 써 대는 거예요. 문둥이가 된건 난데 왜 아버지까지 죽어야 하느냐는 거지요. 형이나 누나들이 아버지만 믿고 사는 판에 아버지가 죽으면 그들은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완강한 힘으로 자기 혼자 죽을 테니 아버지는 어서 나가라고 떠미는 아들 녀석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그애를 와락 껴안고 말았습니다. 참 죽는 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 그 후 아들은 소록도로 떠나고 나는 서울로 돌아와 서로 잊은 채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손자 손녀를 낳고... 얼마 전에 큰아들이 시골의 땅을 다 팔아서 함께 올라와 살자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했지요. 처음 아들네 집은 편했습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되고 이불 펴 주면 드러누워자면 그만이고.... 가끔씩 먼저 죽은 마누라 생각이 났지만 얼마 동안은 참 편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애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큰아이가 입을 엽디다. 큰아들만 아들이냐고요. 그날로 말없이 짐을 꾸렸죠. 그런데 사정은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어요. 둘째, 셋째, 넷째...허탈한 심정으로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왔을 때 문득 40년 전에 헤어진 그 아이가 생각나는 겁니다. 열한 살에 문둥이가 되어 소록도라는 섬에 내다 버린 아이, 다른 아홉 명의 아들에게는 온갖 정성을 쏟아 힘겨운 대학까지 마쳐 놓았지만 내다 버리고 까마득하게 잊어 버렸던 아이. 다시 또 먼길을 떠나 그 아이를 찾았을 때 그 아이는 이미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쉰이 넘은 데다 그 동안 겪은 병고로 인해 나보다 더 늙어 보이는, 그러나 눈빛만은 예전과 다름없이 투명하고 맑은 내 아들이 울면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버지를 한시도 잊은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40년이나 기도해 왔는데 이제서야 기도가 응답되었군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닭을 여유도 없이 물었죠. 어째서 이 못난 애비를 그렇게 기다렸는가를. 자식이 문둥병에 걸렸다고 무정하게 내다 버린 채 한 번도 찾지 않은 애비를 원망하고 저주해도 모자랄 텐데 무얼 그리 기다렸느냐고... 그러자 아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었노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참한 운명까지 감사하게 만들었노라고. 그러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자기의 기도가 응답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때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온 정성을 쏟아 가꾼 아홉개의 화초보다. 쓸모 없다고 내다 버린 하나의 나무가 더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변화시킨 분이라면 나 또한 마음을 다해 받아들이겠노라고 난 다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내 아들은 병이 완쾌되어 여기 음성 나환자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애는 내가 여기 와서 함께 살아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애와 며느리, 그리고 그 애의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 바람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눈빛에는 지금껏 내가 구경도 못했던 그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다. 공들여 키운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서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라고나 할까요...나는 그 애에게 잃어버린 4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애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그러니 제발 목사님, 저를 여기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 잃어버린 40년의 세월 중에서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 완전한 부부생활 / 베나드 R. 위이즈/방현뒷, 보이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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