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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과 나의 간증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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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9 17:51:39

중고등부 성경공부

제 37 과 나의 간증이 있습니까?

읽을 말씀(행22:1-22)
외울 말씀(벧전3:15)

김필곤 목사 (열린교회)

열린 마음

어느 주일 날이었습니다.중학교 3학년 1반 아이들 두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예배가 끝난 후 집으로 전화를 하였습니다.어머니가 전화를 받았습니다.왜 교회에 나오지 않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뜻밖에도 어머니의 대답은 아침 일찍 교회에 간다며 성경 찬송가를 가지고 나갔다는 것입니다.다른 학생도 마찬가지 였습니다.둘은 친한 친구 이니까 아마 같은 행동을 취하겠다고 생각하고 그 아이들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오락실 이곳 저곳을 뒤졌습니다.그들은 성경 찬송을 옆에 놓고 한 오락실 귀퉁이에서 열심히 오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한 학생은 장로님의 둘째 아들이었고 한 학생은 집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그들은 부모님이 깨워 교회에 가라하니까 마지 못하여 성경 찬송가를 가지고 교회에 나오지만 교회에 나오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자신들의 삶에 신앙의 체험이 없었다는 말입니다.다시 말하면 신앙의 간증이 그들의 삶에는 없었습니다.내가 에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구체적인 경험이 있습니까? 나는 왜 교회에 나옵니까? 서로 이야기 해 봅시다.
 

 열린 말씀

1.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육신의 자녀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교회에 나오기는 나오나 그 안에 생명이 없는 자는 사산한 자와 같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같으나 여러가지 고통 가운데 교회를 떠나는 자들은 유산한 자와 같습니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하긴 했지만 자신과 타인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태어나는 자들은 난산한 자와 같고 순탄하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사람된 자들은 순산한 자와 같습니다.그런데 간증이란 사산이나 유산한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이 하나님께로 향한 삶의 변화를 고백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간증에는 그리스도를 믿기전의 삶과 그리스도를 믿게된 경위와 그리스도를 믿은 후의 삶의 변화가 들어 가 있습니다.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1-5)

 

 

2. 바울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경위를 말해 보십시오.그는 어떻게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까?(6-16)

 

 

3.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습니까?(17-22)

 

 

4. 다음은 간증의 가치를 말한 것입니다.적절치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

① 간증은 개인적인 체험을 고백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② 간증은 서로 부담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믿지 않은 친구들을 전도하는 데 유익합니다.
③ 간증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확실한 간증이 있을 수록 자신의 신앙성장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④ 간증은 개인적인 고백으로 타인에게 공개할 필요 없는 것으로 신앙생활에 별 도움이 못됩니다. 

5. 간증은 신앙생활에 있엇 참으로 중요합니다.간증은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의 하나입니다.그리스도를 구주로 삼은 사람은 항상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벧전3:15)

 

 

6. 우리가 간증을 할 때는 무엇을 말하여야 합니까?(요일1:3)

 

 

7. 간증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1) 계12:11

 

 

2) 막5:19-20

 

 

3) 요4:39-42

 

 

 열린 생활

1. 간증이란 자신의 지난날을 다 이야기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자신이 변화된 내용중에 특별한 것 한 가지를 믿기 전과 믿을 때 믿고 난 후로 나누어 사실을 솔직하게 일인칭으로 말하는 것입니다.결코 간증은 설교가 아니므로 자신이 예수 그스스도를 믿게 된 경위를 구체적인 사실로 증거하면 됩니다.당신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서로 이야기 해 봅시다.


 열린 가정

1. 나의 간증을 노트 2장 분량으로 써 옵시다. 
 

 열린 이야기

다음 글을 읽고 느낀 점을 기록해 보세요.

1954년 제주 중문 출생.<월간문학>신인상당선.<뿔없는  사슴들>,<천한 자와 귀한 자들>  나는 어릴 때부터 꽤나 노름을 좋아했다.잠자리에 들면 천장에 화투가 아른거리고, 학교에 가면 칠판에 화투가 보일 정도로 노름에 심취-이 말의 묘미를 경험자가 아니고서는 짐작조차 못 하리라-해 있었다.  학교에 갔다오기가 바쁘게 책가방을 던져 놓고 우리들은 미리 약속해두었던 장소로 모이곤 했다. 그 장소가 대부분 홀어머니하고 사는 아이들의 집이었고,사정이  여의치못할  때는 남의 밀감 과수원이나 동굴 속에서 촛불을 켜 놓고 밤을 세우는 것까지도  불사하였다. 국민학교 5학년 때는 팔뚝맞기가 고작이더니,6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성냥개비  따먹기,강남콩 따먹기로 번졌고,중학교 배지를 달고부터는 동전이 화투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제주도의 바닷가에 있었던 우리 마을은 노름이 성행했고 노름으로 패가망신을 한 집도 여럿 되었다. 노름이란 이상한 놀음이다.밑지면 밑질수록 더 하고 싶어지는게 노름이다. 황소 한 마리를 의지해서 살던 사람이 노름으로 소를 잃었다.그는 후회하면서 다시는 노름을 안 하겠다고 맹세하며 작두로 엄지손가락 하나를 잘랐다.손가락이 채  아물기도 전에 그는 다시 노름판으로 달려갔다.  그만큼 노름이라는 것은 사내 대장부에게는 매혹적인 놀음이다.노름을  하고  잘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 이 노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름은 집안을 망친다는 의식이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우리 어머니 역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아버지가 멀리 가 있었기에 우리 집안-집안이래야 고만 고만한 아들 딸 각각 두 명씩 어머니뿐이었지만-에서 차지하는 어머니의 세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니랑 호아 노름허지 말라이." '너는 제발 노름하지 마라.'는 제주도 사투리로 어머니는 늘 그렇게 당부했다.그것은 당부라기보다는 명령과 강요였다.  그러한 당부가 있었기에,어머니의 눈을 슬슬 피해 가며 노름을 해야 하는 나는  마치 '곡예사의 줄타기'와 같은 심정으로 화투를 만져야만 했다그러면서도 나는  족제비 새끼처럼 집을 잘 빠져 나갔다.숙제하러 간다고 책 몇 권을 갖고 나와서는  48페이지 그림책(화투)을 보며 꼬박 하룻밤을 새우고 아침에야 어슬렁어슬렁 들어갔다.  그러면 단순했던 우리 어머니는 눈이 충혈되도록 공부한 아들이 대견스러워 보이는지 미소로 반겨주곤 했다. 밤을 세운 날이면 학교에 가서 졸 수 밖에 없었다.그러다가 선생님에게호통을 맞기도 했다.그렇지만 '칠성통 오토바이'라고 별명이 붙은 저 무서운 학생과장 선생님도 우리가 밤새도록 노름을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우리 노름꾼 친구들은 슬쩍 눈을 마주치고 눈읏음을 교환하면서 최고의기분을 맛보았다.우리만 알고 있다는 득의만만한 동료 의식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노름벽은 오래 가지 못했다.우리의 위대하신 어머니가 내 비밀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그 비밀이 탄로난 것은 내 실수와 무관했다.  나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처음으로 해 보는 도둑질이었다.어머니의 지갑에서 5원짜리 백동전 두 개를 꺼내어 화투를 샀다.  나는 이제 의젓한 화투의 주인이 되었다.모든 아이들은 일단 내 허락을받아야 화투를 만질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친구집으로 몰려갔다.오후 5시쯤 되었는데 이제 시작하면 저녁  먹는  것도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노름을 막 시작했을 때 우리보다 서너 살이 많은 애가 찾아왔다.같이 끼겟다는  것이다.우리는 번번이 그 애에게 돈을 잃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그 애는 화풀이로 내 어머니에게 말해 버렸다.누구한테서 들었는지 돈을 훔쳐 화투를 샀다는 것까지도. 어머니가 달려왔다.  '우리집 장손이 노름을 하다니......'아 사실은 어머니에게 있어서 대단한  충격이었다.어머니는 방문을 확 열어젖뜨렸다.  "이노므 새끼야!"  그 호통에는 심한 원망과 아픔이 담겨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아귀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어머니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창구멍으로 내다보는 친구들의 눈동자가 보였다.그 눈에는 내가혼날 일보다는  어머니의 손에 움켜져 있는 화투를 빼앗긴 아쉬움만이가득 차 있었다.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았다.어머니는 돌 위에 화투를 놓고 돌맹이로 갈기갈기 짓찧어 버렸다.  아,그 애석함. 그러나 애석함보다는 어머니의 허탈한 눈물이 더 내 마음속에 진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 후에도 어머니의 눈을 피해 가며 계속 노름을 했지만,교회에도  열심히  출석을했다.노름으로 인해 오늘날 내가 신학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물론 지금은 노름을 하지 않지만 그 일은 추억을 떠올릴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아름다움이고,그것으로 인해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사실에는고마움까지 느껴도 될 것 같다.

- 노름과 어머니의 눈물/  강 정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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