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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믿음의 새 천년을...
김필곤목사 조회수:38980 추천수:1 112.168.96.71
2002-10-31 16:24:30
이제 한 세기가 지나고 새로운 세기가 다가왔습니다. 20세기는 과학문명이 지배한 세기였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중 포드 회사가 주도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20세기 큰 흐름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20세기적 생산. 소비양식을 출발하게 한 사람은 포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포드주의"라고 말을 합니다. `포드주의는 단연 20세기의 지배적인 생산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19세기 중엽 연장 몇 개만 챙겨들고 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농부의 손자, 농사지을 땅을 얻은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아버지의 아들로서 포드는 열여섯 되던 해 고향 디어본을 떠났습니다. 8 마일을 걸어서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뒤 아직은 규모가 작던 웨스팅 하우스나 에디슨의 전기회사에서 생활비를 벌며, 한편으로 자동차 발명에 몰두하였습니다.

어느날 마차를 보고 "말 없이 갈 수 있는 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드의 아내는 주급 5 달라를 받으면서 남편의 꿈을 믿었습니다. 결국 헨리 포드는 집의 창고를 개조한 실험실에서 자신의 발명품, 최초의 포드 자동차를 이끌고 잠든 도시의 거리로 끌고 나왔습니다. 자전거 바퀴 4개에다 4륜 마차의 차대를 얹고 자신이 직접 만든 2기통 짜리 휘발유 엔진을 장착한 이 `말 없는 마차'가 풋풋 소리를 내며 첫 주행을 하는 디트로이트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성공하였습니다. 스스로 농부의 아들이자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공언해온 그는 술과 담배와 사치를 멀리했고, 금융수입으로 살아가는 행태를 증오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자동차 왕"은 "포드의 꿈과 그의 아내의 믿음의 합작품"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들 부부가 죽은 후 사람들은 기념관을 세우고 이런 비문을 만들었습니다."포드는 꿈의 사람이요,그의 아내는 믿음의 사람이다"
꿈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꿈만으로 모든 것이 다 되지는 않습니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황소의 머리"는 자전거의 좌석과 손잡이로 만든 것입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을 지라도 피카소의 손에서는 가치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 없는 돌일지라도 미켈란젤로에게 가면 걸작「모세」와 같은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길가에 버려진 돌일지라도 위대한 조각가의 손에 붙들리면 고귀한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꿈이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게 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꿈과 믿음의 새 천년을.../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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