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은 걷기에 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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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목사 조회수:4530 추천수:4 112.168.96.71
- 2002-11-09 13:16:30
이탈리아의 발명가이며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스물여섯 개의 뼈, 열아홉 개의 근육, 백여섯 개의 인대로 된 인간의 발을?공학의 결정체요, 예술작품?이라고 했습니다. 발은 인체 기관 중에 별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엄지발가락 하나만 없어도 보행이 불편하게 되는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입니다. 이 발로 사람들은 일생 동안 지구 둘레의 2와 2분의 1에 달하는 10만 5,000킬로미터 정도를 걷게 됩니다. 이 귀중한 발을 보호하고 좀더 편리하게 걷기 위해 인류는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신발이라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나무 껍질과 동물 가죽으로 된 최초의 신발부터 나이키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신발은 길고 긴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리 롤러가 쓴 「신발의 역사」에 의하면 신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기능은 발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전 역사를 통틀어 군인들은 두 다리와 발을 보호하기 위해 부츠를 신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문명이 발달될수록 신발은 단순히 발을 보호하는 기능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신발은 사람의 신분을 구별하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루이 14세의 붉은 굽 구두나 샤를마뉴의 금과 에메랄드로 장식한 붉은색 가죽 신발은 권력을 상징했습니다.
부와 권력을 소유한 사람일수록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신발들을 만들어 신었습니다. 신발은 한 개인의 부를 표현하며 이를 통해 그의 사회적 지위, 정치 성향,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드러냈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 때는 새로운 신발법을 공포하여 왕자는 그가 원하는 만큼 길고 뾰족한 크레코를 신을 수 있으며, 귀족은 60센티미터, 신사는 30센티미터, 보통 사람들은 15센티미터까지 허용했다고 합니다. 키가 160센티미터였던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자신만이 신을 수 있는 굽이 13센티미터인 독특한 구두를 신었고 영국의 왕 중 가장 영리하면서도 게으른 왕이라고 불리우는 찰스 2세 끝이 뭉툭한 신발 윗 부분에 비단으로 만든 장미를 붙였다고 합니다.
한나라 성제의 사랑을 받은 비연은 금가루를 먹여 기른 금거미의 거미실로 만든 신발을 신었다고 하고 양귀비의 신발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목졸려 죽임을 당한 현장에서 이웃 할미가 신발 한짝을 주워 나라 안을 돌아다니며, 이를 보는 데 1금, 만져보는 데 10금, 신어보는 데 100금을 받아 수만금을 챙겼다고 합니다. 아마 동서 고금 최고의 신발광은 필리핀 대통령 부인이었던 이멜다일 것입니다. 1986년 민중혁명으로 마르코스 일가가 국외로 탈출했을 때 말라카냥 궁전에는 소문난 이멜다의 구두가 1220켤레나 남아 있었습니다. 신발은 결코 장식품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신발일지라도 신발은 걷기에 편해야 합니다. 신을 수 없는 신발은 신발의 신발됨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신발은 걷기에 편해야 합니다./김필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