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은 삶을 위한 먹을 거리입니다
유머 작가인 루코크는 현대판 성령강림의 사건을 다음과 같이 풍자해서 썼습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림”이라는 광고가 났습니다. 적어도 120여명은 모였어야 할 예배에 출석한 사람은 겨우 40여명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최근 가족과 함께 구입한 갈릴리 호수의 별장으로 주말여행을 떠났고, 바돌로매는 집에 손님이 와있기 때문에 예배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빌립의 가족은 지난 밤 늦도록 계속된 파티의 후유증으로 자고 있으며, 안드레는 새 차를 구입하려고 모터쇼 장에 갔습니다. 마태는 근무처인 세무서에 시간외 근무를 나갔고, 요한은 사업차 골프를 치러 떠났습니다. 도마는 취직시험이 주일과 겹쳤으니 당연히 나올 수 없었습니다. 불길 같은 성령도 망설이다가 다락방 앞에서 되돌아갔습니다.”
현대인들은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쉼이 필요한 시간에도 일과 놀이로 지쳐가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가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숨 가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식입니다. 일과 생산성이 삶을 지배하고, 한 사람의 생산성이나 성취가 사람의 가치로 평가되는 문화 속에서 생산과 성취를 위한 노동을 중단하고 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의 질을 위해서는 끝없이 계속되는 생산을 위한 노력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안식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략, 계획, 근심, 걱정, 긴장, 노력, 욕구, 폭력, 음란, 쾌락 등 끝없이 밀려오는 긍정적, 부정적 삶의 과제와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안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쉼, 지적인 쉼, 정서적인 쉼, 육체적인 쉼, 사회적인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쉼은 낭비가 아닙니다. 글과 음악에도 쉼표가 있고, 조각에도 공간이 있으며, 그림에도 여백이 있듯이 인간에게 참된 쉼이 필요합니다. 활도 시위를 계속 팽팽히 당기고만 있으면 나중에는 쓸모없는 도구가 되고 맙니다. 가느다란 대나무도 마디가 있기 때문에 길고 강하게 자라납니다. 사람의 숨쉬기도 호(呼)와 흡(吸) 사이에 쉼이 있어 숨을 힘 있게 쉴 수 있습니다. 안식은 창조질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후 안식(安息)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식에 인간이 동참하길 원하십니다. 숨 가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식입니다. 사람은 쉼을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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