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은 쌓음이 아니라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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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목사 조회수:3845 추천수:1 112.168.96.71
- 2007-12-23 15:39:17
땅콩박사 조지 워싱턴 카버는 1860년대 어느 해 미주리 주의 한 농장에서 흑인 노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알칸사스의 게릴라병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고 그는 어머니의 주인이었던 수잔 카버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그는 11살에 농장을 나와 중서부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 낮에는 닥치는 대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21살 때는 대학에 들어갔지만 흑인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합격을 취소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흑인으로서 역사상 최초로 과학 학사학위와 농업 및 미생물식물학 석사학위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모교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교수직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어려운 이들의 교육을 위해 창립된 터스키기 흑인 교육기관에 근대농업학 교수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농부를 찾아가 농사와 요리법, 겨울철 야채 저장방법과 위생적인 주택관리법 등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는 질소로 황폐해진 남부에 목화를 대신하여 땅콩을 심어 큰 수확을 거두게 하였으나 과잉 생산으로 말미암아 농부들은 빗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카버는 책임감을 느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왜 땅콩을 창조하셨는지 그 용도를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카버는 귓전을 맴도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땅콩을 분해한 후에 다시 합성해보아라.' 이후 카버는 실험실에 들어가 연구하여 105가지의 땅콩을 재료로 한 음식과 300여 가지의 제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카버의 연구가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변화를 가져오자 수천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헨리 포드는 10만 달러의 급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지는 이러한 기회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는 오직 연구에 몰두하고 이익을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수많은 항목 중에 오직 소수만을 특허 받았고 훌륭한 사업의 기회와 비싼 연봉을 마다하고 일평생 겸손과 검소한 삶으로 흑인들은 물론이고 백인들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급 29달러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간인데 생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 외에 무엇을 더 받겠느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는 과학자 이전에 그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생각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부통령 윌러스는 그를 일컬어 "카버박사는 미합중국에서 가장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성경에 나와있지요.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3:6)'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7.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