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계단 거치지 않고 열 계단을 오를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신문 제목을 보니 “가상화폐로 400억까지 벌고 퇴사?…'붕 뜬' 직장인들”이라는 선정적인 글을 보았습니다. 누가 그런 사람을 보고 박탈감은 느끼는 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을 보고 직장인들이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상업적이고 정략적인 신문들이 그런 기사를 통해 그들만이 의도하는 바가 있겠지만 그 기사를 보는 사람들에게 제발 박탈감을 느끼라고 기사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바리 부인>으로 당대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던 플로베르에게 젊은 제자가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셔야지 이게 뭡니까”라고 따져 물었답니다. “배움을 위해 계단을 수천 번씩이나 오르내렸다”고 말했답니다. 제자가 된지 몇 달이 지나도록 특별한 가르침을 주지 않는 스승이 야속했답니다. 제자의 항의에 플로베르가 물었답니다. “그래 계단을 수천 번씩이나 오르내렸단 말이지, 그럼 자네 혹시 우리 집 계단이 몇 개인지는 알고 있는가?” 제자는 대답하지 못했답니다. 이때 플로베르는 제자가 평생 마음에 새겨 돌을 말 한마디를 해 주었답니다. “하찮은 일 하나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작가의 기본이야” 그 제자는 플로베르가 만년에 가장 총애했던 제자 모파상이라고 합니다.
나뭇잎 하나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는 사람이 좋은 작가는 될 수 없습니다. 첫 계단을 밟지 않고 열계단을 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너무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허황된 생각으로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자는 모르겠지만 “삶의 역설(逆說)”이라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날아오르는 연줄을 끊으면 더 높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땅바닥으로 추락(墜落)하고 말았다. 철조망을 없애면 가축들이 더 자유롭게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관심(關心)을 없애면 다툼이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다툼이 없으니 남남이 되고 말았다. 간섭을 없애면 편하게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외로움이 뒤쫓아 왔다. 바라는 게 없으면 자족할 줄 알았다. 그러나 삶에 활력(活力)을 주는 열정(熱情)도 사라지고 말았다. 불행(不幸)을 없애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幸福) 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말았다.”
주어진 일이 아무리 힘들고 하찮아도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곳에 삶의 가치와 행복이 있습니다. 작다고 무시하고, 하찮다고 의미없이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한 알의 씨앗이 큰 나무가 되는 것이며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여 집이 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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