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담긴 그릇에 따라 모양이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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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목사 조회수:4891 추천수:27 112.168.96.71
- 2009-12-27 07:04:12
같은 물이라도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물의 모양은 달라집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법관의 옷을 입으면 법조인처럼 보이고 의사의 옷을 입으면 의료인처럼 보입니다. 똑같은 사물도 사람이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은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고 있는 것만이 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아닙니다.
에티오피아의 메앤 족을 상대하여 실험을 해 보았답니다. 사진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그 부족에게 사람과 동물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진의 2차원 이미지를 '읽지' 못했답니다. 그 부족은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고, 냄새를 맡고, 구기고, 구겨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답니다. 그들은 사진을 조금 찢어서 맛을 보기도 했답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사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진을 담을 만한 그릇이 없었던 것입니다.
개구리는 어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지 못하며, 색채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맛좋은 자그마한 벌레나 갑자기 다가오는 황새 등 잡아먹거나 잡아먹히지 않는 데 필요한 것들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개구리의 눈은 개구리의 뇌에 아주 선별적인 정보만을 제공하고 오로지 선별적인 감각 카테고리만을 지각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구리보다는 훨씬 넓지만 모든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 역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인식하는 것입니다. 너무 큰 것도 너무 작은 것도 보지 못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는 것도 너무 멀리 있는 것도 보지 못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의 눈썹도 거울이 아니고는 볼 수 없습니다. 내가 볼 수 없는 것도, 내가 느낄 수 없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입니다. 동물이 보는 세계나 인간이 보는 세계나 객관적으로 같은 세계이지만 인간은 동물보다 훨씬 많은 세계를 지각하고 인정하며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시14:1)” 사진의 2차원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에멘 족처럼 사진을 담을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 인식의 틀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험은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의 눈으로 영원한 세계를 보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에 나오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망원경으로 보면 멀리 있는 것도 볼 수 있듯이 성경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을 보고 영원의 세계를 만질 수 있습니다. 마음을 넓히면 눈이 열립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119:18).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