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이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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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목사 조회수:6215 추천수:25 112.168.96.71
- 2012-10-07 07:30:16
서울 남산 자락 빌딩 숲 사이에는 아직도 ‘쪽방촌’이 있습니다. 쪽방은 ‘쪼갠 방’의 준말로 0.7평의 비좁은 방입니다. 부엌과 화장실, 욕실조차 없고 단지 ‘잠만 잘 수 있는 방’입니다. 경쟁의 끝자락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쪽방 주민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은 여름이라고 합니다. 비좁은 데다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말 그대로 ‘찜질방’으로 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1997년 자신의 퇴직금 3000만원을 바쳐 ‘나사로의 집’을 설립하여 1700여 세대를 15년 동안 섬기는 김흥용 목사가 있습니다.
50평짜리 무료 목욕탕을 만들어 코끼리 등짝처럼 덕지덕지 앉은 때를 밀어주고 이발을 해주었습니다. 그의 삶을 정리해 <쪽방 동네 거지 왕초>라는 책을 내고 74세 작은 노인인데도 여전히 '왕초'라 불리면 봉사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삼척이 고향인 김 목사는 무작정 상경해 걸인(乞人)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나갔다가 한 장로의 도움으로 학교 경비와 이발사, 공장노동자, 한국은행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였습니다. 은행 근무 중 두 번의 대수술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하여 50대 중반의 나이에 야간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만성 신장염으로 신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 신장이 전체 1/3만 남았습니다. 질병과 치유과정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결단한 그는 퇴직 1년 뒤인 1996년 서울역 주변의 걸인들을 눈여겨 보았답니다. 그는 가족 앞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귀한 사역을 발견했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답니다. 직접 걸인 생활을 해본 그는 씻지 못하는 고통이 뭔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기에 그들을 위한 삶으로 헌신하였습니다. 쪽방촌 대부가 되어 쪽방 주민과 노숙인 2000여명을 돌보며 그들의 취업과 인생, 건강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위해 이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명으로 일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보다는 고통 받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삶으로 전력하다 위암으로 위도 떼어내고 뇌졸중까지 와 가끔 집을 찾지 못하는 때도 있어 집 주소가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다니지만 그의 사명은 고난의 늪에 잠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질병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사명으로 일어났습니다. 74세 작은 노인은 바람에 날아갈 듯 여윈 몸이지만, 죽음보다 강한 소명을 붙들고 쪽방촌에 다시 교회를 열 희망에 부풀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목회 일선에선 은퇴했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계속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쪽방 주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여생을 그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