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실한 과일은 태풍을 지나보아야 압니다
위기를 겪어 보아야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때 그리스도인은 ‘파라볼라노이’라는 칭호로 불렸습니다. 그 의미는 ‘위험을 무릅쓰는 자’라는 뜻입니다. 251년 말에 엄청난 전염병이 유행했습니다. 데시우스의 박해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희생당할 때였습니다. 전염병은 종교나 신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생명을 빼앗아갔고 사람들은 전염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도망다녔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의 관리나 부자는 감염자를 피해 도시를 떠났지만 기독교 공동체는 남아서 서로를 돌보며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사랑으로 간호하다 천국의 소망을 안고 함께 죽었다고 합니다.
도시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때에 키프리아누스는 마태복음 5:43-48의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가 단지 우리들만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끼리만 자비를 베푼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세리나 이교도들이 하는 것 이상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관용을 베푸신 것 같이 관용을 베풀고, 원수조차도 사랑하며, 주님께서 권고하신 대로 핍박하는 자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온전하게 될 것이다.”, "천국에 간 희생자들을 위해 슬퍼하지 말고, 산사람들을 돌보는 노력을 두 배로 증대해야한다"라고 설교하였답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염병에 감염된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조건 없는 베풂을 실천했습니다. 이들에게 붙여진 영예로운 이름이 ‘파라볼라노이’ 였습니다. 이들을 통해 많은 인명이 구해졌고, 이 모습을 보면서 이교도들은 기꺼이 신자가 되기를 자청하였다고 합니다.
한 세기가 지난 후, 비기독교인이였던 황제 줄리안도 신앙인이 비기독교인 병자들까지 어떻게 헌신적으로 돌봐 줄 수 있었나를 말했고 동시에 교회 역사학자 폰티아누스는 어떻게 당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행했는지 언급했다고 합니다. 사회학자이자 종교인 인구통계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 공동체가 있는 도시에서 사망률이 다른 도시의 절반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답니다. <페레기너스의 죽음>이란 책을 써서 기독교를 비방했던 루시안은 “그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그 형제들에게 도움을 줄 일이 발생하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도움을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형제에 대한 배려를 아까워하지 않았다”라고 썼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11)”.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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