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을 바꾸면 다르게 보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집 마당을 쓰는 하인이 세 시간 이상 지각하자, 화가 나서 해고해야겠다고 작정했답니다. 그는 3시간 후 허겁지겁 달려온 하인에게 빗자루를 던지며 “당신은 해고야! 빨리 이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하인은 “죄송합니다. 어젯밤에 딸아이가 죽어서 아침에 묻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빗자루를 들며 말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타고르는 인간이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을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배웠다고 합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과 말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반 잔의 물을 보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frame)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입니다. 프레임 이론의 주창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인 과정이며, 이성보다는 감정, 마음과 관련된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은 각자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서 이 프레임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반대의 사실들은 무시한다고 합니다. 상대에게 아무리 많은 ‘사실’을 들이댄다 해도, 프레임에 포착되지 않으면 사실의 조각들은 접수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코끼리냐 아니냐’를 두고 한참을 싸워봤자 마지막에 뇌리에 남는 것은 ‘코끼리’일 뿐이라고 합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들은 더욱 코끼리를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심층 프레임은 하룻밤 사이에 변화하지 않고 진실과는 상관없이 상대편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단지 그 프레임을 강화할 뿐이라고 합니다.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 번 마음 정하면 잘 바뀌지 않는 이유입니다. 무슨 정보가 들어와도 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사용해 버립니다.
그래서 적폐청산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종북좌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계속 수평선을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진영논리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죽는 날까지 프레임의 노예로 삽니다. 자신의 안경을 바꾸지 않는 한 세상을 어디에 가든 새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지역주의의 안경, 연고주의의 안경, 편견의 안경, 선입견의 안경, 욕심의 안경, 아집의 안경, 교만의 안경을 벗으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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