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엔 주머니가 없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악명 높은 억만장자라는 비난을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민자의 집에서 태어나 어려운 형편 때문에 일찍이 돈에 눈을 떴습니다. 10살에 나이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았습니다. 청소할 집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해주는 등 끊임없이 돈 벌 궁리를 했습니다. 코넬 대학에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남녀 학생 기숙사 주변에서 팔았기에 대학 시절 내내 그는 ‘샌드위치 맨’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면세점 사업과 기업 투자로 악착같이 돈을 벌었습니다. 드디어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돈 밖에 모르는 수전노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1997년 세계적인 면세점 체인 DFS의 매각 문제로 법정 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의 사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했고 이로 인해 그만의 은밀한 ‘비밀 장부’가 발각되었습니다. ‘뉴욕컨설팅’이란 이름의 회사 명의로 15년간 수억 달러를 횡령한 듯한 비밀 장부였습니다. 그는 소송에 휘말렸을 때 변호사 수임료마저 깎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경제인 모임에서도 계산을 하지 않으려고 일찍 자리를 뜨는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밀 장부는 횡령을 위한 분식회계 장부가 아니라 남몰래 약 2900회에 걸쳐 어려운 이웃을 위해 후원한 ‘비밀 기부 장부’였습니다. 이 일로 그는 ‘냉철한 억만장자’라는 누명을 벗게 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자선사업의 제임스 본드'로 불렸던 면세점(Duty Free Shop)의 창시자이자 아틀란틱 필란트로피 재단의 설립자 찰스 F 피니(Charles F. Feeney·일명 척 페니)였습니다.
그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1982년부터 남모르게 익명으로 9조 5천억원을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5개 대륙, 1천여 개 기관에 그의 후원금은 전달됐지만, 이 중 어느 곳도 벽이나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업체 운영으로 벌어들인 수익금 중 운영 자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돈을 대학, 병원, 사회단체 등에 기부했습니다. 하루에 15억 2,865만원씩 기부했지만 자신의 명의의 차도 집도 없었습니다. 부인과 함께 임대주택에 살면서 15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차고 다니며, 동네의 허름한 식당을 즐겨 찾았습니다. 피니는 “돈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한꺼번에 신발 두 켤레를 신을 순 없다”며 나눔을 실천하고 평생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택하여지리라(잠11:24-25)”.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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