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닭은 서열질서가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2년 노르웨이의 셸데루프-에베(T. Schjelderup-Ebbe)는 닭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닭들은 엄격한 서열 사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서열이 낮은 닭은 모든 닭에게 시달림을 받는다고 합니다.
쥐도 서열이 있다는 것입니다. 6마리의 쥐를 물을 건너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위치에 놓으면 서로 맹렬히 싸우다 곧 승부가 나고 계급이 나눠진다고 합니다. 2마리의 지배자, 2마리의 노예, 1마리의 독립주의자, 1마리의 천덕꾸러기라고 합니다. 3마리의 쥐가 물을 건너서 먹을 것을 가져오고(2마리의 노예와 1마리의 독립주의자) 2마리의 노예는 먹을 것을 2마리의 지배자에게 바치고 남은 것을 먹는다고 합니다. 독립주의자는 먹을 것을 바치지 않고 자신의 것만 먹고 천덕꾸러기는 여기 저기 흘린 것들만 주어먹는다고 합니다. 지배자 끼리 6마리를 모아 놓아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로버트슨은 그의 저서 <승자의 뇌>에서는 권력을 잡으면 사람이 변한다고 말합니다. 승자의 뇌 속에는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어 장기적으로 뇌의 구조를 바꿔놓는다는 것입니다. 목표달성이나 자기만족에 집중하면서, 공감능력은 허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중독성이 있어 독재자는 계속해서 자기가 권력을 잡아야 하고, 자기만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약물은 시야가 좁은 뇌를 만들고, 항상 자신감을 보이며, 주변의 경고를 무시하게 하고 오만에 빠져 실패를 걱정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 권력이든, 돈의 권력이든, 미모의 권력이든, 지식의 권력이든, 명예의 권력이든, 건강의 권력이든, 종교의 권력이든 주어질 때 섬김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정도의 차이지 지배욕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의 한계를 벗어나면 공동체를 질서를 파괴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지배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목회자도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리고 지배욕에 결박당하면 교주가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아내도 지배하는 배필이 아니라 돕는 배필로 주었습니다(창2:18). 교회의 직분도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엡 4:12)" 위해 주셨습니다. 무디는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종을 데리고 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라고 했답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어도 하나님은 그 자리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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