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 열면 넓은 하늘이 있습니다
햇볕은 뜨겁고, 공기는 물비린내와 절망의 냄새로 눅눅했습니다. ‘자비의 집’이라 불리던 베데스다 연못가, 그곳은 신음과 체념으로 가득한 절망의 장소였습니다. 수많은 병자들 사이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38년. 한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만큼의 긴 세월을 그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 보냈습니다. 천사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만이 낫는다는 전설. 그러나 그에게 그 전설은 희망이 아니라, 매번 자신의 무력함만 확인시켜주는 잔인한 규칙이었습니다.
그 절망의 한복판으로 예수님이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너무나 당연한 질문 같지만, 주님의 관심은 그의 병이 아니라 ‘의지’였습니다. “너는 이 절망에 익숙해진 건 아니냐? 혹시 낫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 주님은 그의 영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변화의 의지’를 깨우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베데스다를 품고 삽니다. 반복되는 실패, 상처, 관계의 갈등 속에서 어느새 체념에 길들여집니다. 처음에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포기가 편해지고, 무기력이 안정처럼 느껴집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부릅니다. 어릴적 쇠사슬에 묶여 자란 코끼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도망치지 않는 것처럼, 과거의 실패가 현재의 가능성을 질식시킵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병자는 “예, 낫고 싶습니다”라고 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
그의 말엔 세 가지 변명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람 탓, 환경 탓, 세상 탓입니다. 물론 환경은 중요하지만, 주님은 묻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정말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 명령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초대였습니다. “일어나라” 과거의 자기연민에서 벗어나라는 명령입니다. “네 자리를 들라” 실패의 흔적을 은혜의 증거로 바꾸라는 뜻입니다. “걸어가라” 믿음의 삶을 시작하라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그가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38년 동안 굳어 있던 근육에 생명이 흘러들었습니다. 변화는 상황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의 베데스다는 어디입니까? 스마트폰의 불빛 아래 멈춰 있는 시간, 끊어내지 못한 습관, “언젠가”만 반복하는 무기력의 늪입니까?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에 다가와 조용히 물으십니다. “네가 진정으로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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