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자가 굶주린 자의 고통을 압니다
1850년대 미국, 한 소년이 낡은 장부책에 삐뚤빼뚤 글씨를 써 내려갑니다. 이웃의 밭에서 감자를 캐고 받은 37센트, 어미 잃은 새끼 칠면조들을 돌봐 팔고 얻은 몇 달러. 소년은 1센트의 수입과 지출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훗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존 D. 록펠러였습니다. 록펠러의 어린 시절은 ‘결핍’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빌려온 돈은 갚지 말라’고 가르치던 유랑 약장수이자 사기꾼에 가까웠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여러명의 아내를 둔 아버지는 가정에 안정감 대신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죠. 그러나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록펠러에게 정직과 성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십일조의 원칙’을 가르쳤습니다. 불안정한 아버지의 존재라는 결핍은 역설적으로 록펠러가 어머니의 가르침, 즉 신앙과 원칙을 삶의 반석으로 삼게 했습니다.
그는 평생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습니다. 16살, 첫 직장에서 주급 5달러를 받았을 때, 그는 50센트를 떼어 가장 먼저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는 훗날 “십일조를 드리는 습관이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재정 원칙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지만, 그 돈의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철저히 인식했습니다. 그에게 부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할 ‘도구’이자 ‘사명’이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이룬 후, 록펠러는 자신의 결핍했던 시절을 돌아보며 새로운 사명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결핍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나눔은 단순히 돈을 나누어주는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난의 뿌리’를 뽑고자 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을 통해 그는 미국 남부를 황폐화시키던 기생충 ‘구충’ 박멸 사업에 거액을 투자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부자가 왜 쓸데없이 벌레 잡는 데 돈을 쓰는가?” 하지만 구충이 박멸되자 사람들의 건강이 회복되고 노동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지역 경제가 살아났습니다. 병들고 무기력했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을 선물한 것입니다. 또한 시카고 대학교를 설립하여 척박한 땅에 교육의 씨앗을 뿌렸고, 수많은 연구소를 지원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인류에게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입니다. 훗날 그의 관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번 모든 것을 세상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록펠러의 삶은 결핍이 그를 주저앉히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큰 사명을 발견하게 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자가 굶주린 자의 고통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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