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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은 방향이 같아야 행복합니다
김필곤목사 조회수:59567 추천수:4 218.147.218.173
2025-05-25 13:58:26

두 발은 방향이 같아야 행복합니다

 

톨스토이(Leo Tolstoy) 는 러시아 문학의 거장일 뿐 아니라, 말년에 이르러 기독교적 도덕주의, 무소유 사상, 비폭력주의를 실천하려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이상적인 물질관(무소유, 무소유에 가까운 삶)은 결과적으로 가족과의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톨스토이는 <부활>이라는 작품을 쓴 이후 점점 더 성경적 무소유와 평등, 예수의 산상수훈 사상에 심취하였습니다. 귀족 출신임에도 자신이 소유한 지주로서의 권리, , 인세 수입을 모두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실제 톨스토이는 자신이 쓴 책들의 저작권(인세 수익)을 모두 포기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기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 소피아 톨스토이는 13명의 자녀를 둔 현실적 생계와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소피아는 남편의 급진적인 금욕주의와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를 비판하며 점점 정신적으로 붕괴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녀를 영혼을 모르는 여자라 여겼고, 소피아는 남편을 자기 가족보다 민중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톨스토이는 16살 연하인 소피아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18살에 결혼한 소피아는 남편을 위해 헌신적으로 내조했습니다. 소피아는 남편의 원고를 수백 번 필사하고 교정하여,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들이 탄생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그녀는 중년 이후 기독교적 인상주의를 꿈꾸는 남편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191010, 톨스토이는 82세의 나이에 가정을 떠나 무소유의 삶을 살겠다며 가출해 버렸습니다. 열차를 타고 떠난 톨스토이는 며칠 뒤 폐렴 증세를 보였고, 아스타포보 역장의 집에서 병상에 눕습니다. 소피아 톨스토이는 톨스토이가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옵니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주치의와 주변 사람들은 소피아와의 감정적 충돌과 스트레스를 염려하여 그녀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결국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고, 남편의 곁에서 짧은 시간 머무릅니다. 톨스토이는 말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소피아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손을 잡거나 머리맡에 앉아 울었으며, 서로 짧은 눈빛을 나누며 48년의 결혼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녀는 톨스토이가 떠난 후 자신이 남편의 이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남편이 남긴 방대한 문학적 유산을 정리하고 보존하는데 남은 9년을 바쳤습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신념과 살아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부부 관계와 신앙, 책임 사이를 끊임없이 씨름했지만 남편 사후에도 가족과 하인을 돌보며 귀족 가문 아내로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책임과 헌신을 다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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