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두뇌가 아니라 삶의 응답입니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DNA에서 하나님을 만나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과학적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였습니다. 젊은 시절 “하나님? 나는 그런 비이성적인 위안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신앙이란 과학이 밝히지 못한 빈 공간을 억지로 메우는 심리적 환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느낌'으로가 아니라, 철저히 지성과 존재에 대한 질문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말기 암 환자나 삶의 끝에 선 이들이 그토록 고요한 확신 속에서 말하는 신앙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환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무엇을 믿으세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똑똑해서가 아니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그 질문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결국 과학적 훈련을 받은 이성으로, 신앙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콜린스는 <순전한 기독교(C.S. 루이스 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 책에서, 과학보다 더 깊고도 명확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았다.” “DNA는 정보를 담고 있는 분자다. 하지만 그 정보는 누가 설계했는가?”라고 그는 질문하였고 DNA는 그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나는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해줄 수는 있지만, “왜 이 세계가 존재하는가?”, “왜 나는 옳고 그름을 느끼는가?”, “왜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가?” 등은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신론 역시 “신은 없다”는 전제를 믿고 시작하는 일종의 신념 체계라는 것입니다.
그는 무신론자였을 때 다음과 같은 논리를 믿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과 악이 있는 세계에 선한 신은 있을 수 없다. 종교는 인간의 심리적 약함을 보완하기 위한 문화적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생각들이 명확한 증거보다 감정적 반응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특히 도덕적 기준, 즉 “이건 잘못됐어”라는 감각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적인 선과 악의 기준이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보았습니다. 콜린스는 말합니다. “믿음은 이성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도달한 마지막 문을 조용히 열고 나아가는 행위다.” 프랜시스 콜린스의 고백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진리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DNA보다 더 깊은 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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