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화가 큰 재앙이 됩니다
닭은 서열 질서가 강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물학자가 수탉 100마리를 한 울타리에 넣었답니다. 그러자 3일 동안 피 터지게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3일이 지나자 싸우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서열이 정해진 것입니다. 동물들의 서열 싸움과 영역 다툼은 생존본능입니다. 동물은 생존과 생식을 위해 삽니다. 먹는 것 앞에서는 부모와 자식도 없고 힘이 지배합니다. 그런데 <휴머니즘의 동물학(비투스 B. 드뢰셔)>을 보면 야생닭은 서열 질서가 강하지 않다고 합니다. 닭들은 식량을 찾을 때 서로 돕고 알곡을 발견하면 식구들을 부른다고 합니다. 서열 질서는 두 마리의 닭이 동시에 한 알의 알곡을 먹으려고 하는 경우에만 강하게 발동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형 닭장에서 사는 닭들은 서열 질서가 강하여 만날 때마다 억압과 굴종을 강요한다고 합니다. 똑같은 닭이지만 자유롭게 야생하는 닭과 갇혀 있는 닭은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집에서 자기들끼리만 있으면 형제일지라도 주도권을 잡기위해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 동생이 낯선 아이들에게 맞으면 누이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달려가 동생을 보호합니다. 집안에 갇혀 있을 때는 서로가 적이 될 수 있지만 밖으로 나오면 많은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서로 동지가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사는 어느 공동체에서나 나타납니다. 정치인들도 여야가 치열하게 싸우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한 팀이 됩니다. 회사원들도 평상시에 서로 승진하기 위하여 동료를 적으로 보게 되지만 회사가 위기를 당하고 경쟁사의 공격을 받으면 서로 동지가 되어 하나가 되어 경쟁 회사와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종종 서열의식의 종이 되어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다투는 것을 봅니다. 자주 장사 루디아라는 이방 여인의 헌신으로 개척된 빌립보 교회도 서열의식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세밀하고 모성적 사랑이 넘치고, 부드러운 배려가 넘쳤지만, 하나됨이 약했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말이 많고, 말이 많다 보면 아차 하는 순간에 일이 꼬여 알력이 생기게 됩니다. 샘이 많고 질투가 많은 두 여인이 서로 서열 싸움을 하느라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마 더 잘 해보고자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빌립보서 4장 2절에서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 되는 삶을 살라는 것은 단순히 두 여인에게만 주는 교훈이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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