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합니다
신문에서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한 80대 역사학자가 경북 청송군 진보면사무소에 현금 50만원과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연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다 청송군 진보에서 하룻밤을 묵었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 새벽에 숙박비를 내지 않고 빠져나왔답니다. 후에 이일이 계속 마음의 짐이 되어 70년이 지난 후 당시 묵었던 여관을 찾았으나 없어졌답니다. 그래서 그는 서울의 한 특급 호텔 하루 숙박비가 50만원인 것을 참고하여 편지 말미에 '50만원을 동봉하니 이 돈으로 진보면 여관 업무에 사용해 주세요. 저로서 방책이 서지 않아 궁리한 것'이라고 밝혔답니다. 진보면은 이 역사학자의 뜻을 존중해 진보면 내 숙박업소 6곳에 그분의 사연을 담은 양심 거울과 함께 비누 등을 기증하는 데 그 돈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양심이 화인 맞은 세대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있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이 때 기독교인들은 부흥운동을 통해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하고 용서와 화해를 할 뿐 아니라 배상과 보상으로 거듭난 삶을 실제적으로 살았습니다. 과거에 훔친 물건을 돌려주고 금전적으로 배상을 하였습니다. 당시 경기도 백제 출신인 윤성근이라는 고양읍교회 창설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동네에서 ‘불량패류’로 지내다가 전도를 받아 옛생활을 청산하고 새술막교회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흥회에 참석한 후 예수 믿기 20년 전에 주전소에 근무하였는데 어느 날 봉급을 배로 받은 것을 생각했답니다. 직원의 실수였지만 ‘국고 횡령’으로 생각하고 그 돈을 마땅히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주전소에 갔지만 이미 주전소는 없어졌답니다. 그래서 그는 4달러(24원)을 탁지부에 전달했답니다. 그 때 직원은 “양심전”이라는 영수증을 발급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양심전 운동”이 되어 한국 기독교인들의 생활과 교회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답니다. 이런 운동은 불신자와 일반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답니다.
1919년 3.1 운동 때 우리나라 인구 2000만 명 중 기독교인은 15만에 불과했지만 민족 대표 33명 중 기독교인이 16명(55%)이었고, 만세 시위로 수감된 자 중 기독교인이 25-30%였으며 수감자 중 여성은 5%였으나 그 중 기독교 여성은 85%였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5:14)”라고 말씀합니다.
열린편지/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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