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애 대한 태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왕이 역사학자들을 불러 모았답니다. 왕은 "세계사를 한 권으로 압축하라"고 명령했답니다. 역사학자들은 열심히 세계사를 한 권으로 요약했답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결국은 한 권으로 요약했답니다. 왕은 그 책을 다 보고 난 후에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줄여 보라."고 했답니다. 역사학자들은 고민 끝에 이렇게 기록했답니다. "인류 역사는 고난의 역사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싫어하지만, 생로병사의 과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병들지 않고 늙지 않으며 죽지 않는 사람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노예로 출생하여 고문을 받고 절름발이가 되었으나 고통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며, 이를 통해 더욱 강한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신경질환에 시달리다 5살 때 뇌졸중으로 숨지는 고통을 겪었고 몇 달 후 남동생의 돌연사를 목격하는 등 어릴 때부터 심각한 고난을 겪었던 니체는 고통과 고난이 인간의 삶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고난을 겪은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잃고 자식 모두의 죽음을 경험할 뿐 아니라 자신의 질병으로 심각한 통증 가운데 살았던 욥은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욥 5:7)"라고 고백하며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다"(욥14:1)라고 말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고난이 다가옵니다. 그런데 같은 고난일지라도 고난에 대한 태도에 따라 삶의 질, 삶의 의미, 삶의 만족도, 삶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고난에 대하여 “왜 나에게만”이라고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접근하면 고난을 주는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고난의 늪에 갇혀 우울증, 불안증 등의 정신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고난에 대하여 회피적 태도를 가지게 되면 문제와 대처를 미룸으로 문제를 더 심각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고난에 대하여 수동적 태도를 취하게 되면 불평불만의 성찬을 즐길 뿐이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삶은 개선되지 못할 것입니다. 고난의 원인은 다양합니다. 고난이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주어진 징계라면 회개하고 고난의 고리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나쁜 습관이나 나쁜 음식, 절제되지 못한 행동이나 말에 의해 다가 오는 고난이라면 그것을 회개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함으로 범죄하고 고난을 받았을 때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51:1-2)”라고 회개하였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가 있는 요셉처럼 연단으로 다가오는 고난이라면 인내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모진 겨울을 지내는 나무가 봄이 되면 화려한 꽃을 피웁니다. 부화의 고통을 덜어준다고 계란에 미리 구멍을 뚫어 놓으면 병아리는 태어나지 못합니다. 때로는 수해로 모든 사람의 논이 물에 잠기는 것처럼 하나님의 통치 섭리 가운데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위치에서 자녀를 위해, 나라를 위해, 사업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고난이라면 기쁨으로 그 고난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3-14)”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처절한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힘이 없어 당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대속을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고난의 종류에 따라 대처하는 태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고난 앞에서 다윗이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라고 고백한 것처럼 신앙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난을 디딤돌로 삼고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서로 정죄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보다는 서로 위로하며 용기를 주며 격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늙어 죽어가는 과정은 누구나 거쳐가야 할 가장 큰 고난의 과정이지만 죽음이란 가장 큰 고난 끝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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