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효능감
무기력이란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런 무기력은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도 하는데 이런 무기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보다 후천적으로 학습된다고 합니다. 학습성 무력감(學習性無力感)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셀리그먼 박사입니다. 개를 대상으로 전기 충격에 의한 조건 형성 연구를 하는 도중에 반복적으로 피할 수 없는 전기 충격을 받은 개는 극도로 무기력해져 피할 수 있는 전기충격조차도 피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답니다. 쥐와 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로 학습된 무기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답니다. 이 무기력은 원인을 제공한 지점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까지 일반화되더라는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가 전기 충격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피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한 쥐는 나중에 물속에서 헤엄쳐 탈출해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잘 행동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두 가지 학습된 무기력 실험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혐오스런 소음을 들려주었답니다. 한 집단은 버튼을 누르면 소음이 꺼지게 했고, 한 집단은 어떤 반응을 해도 소음이 꺼지지 않도록 했답니다. 그 후 개들과 같이 소음이 들리는 상자에 넣고 반응하게 하였더니 버튼을 눌러도 소음이 꺼지지 않던 집단의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앉아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소음을 받아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인간도 동물처럼 통제 불능의 경험을 하게 되면 학습된 무기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실패 경험을 하면 스스로 안 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무기력하게 될 뿐 아니라 성적도 다른 집단보다 나쁘고, 고통도 훨씬 심하게 받는다고 합니다. 밤새워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나는 별수 없구나. 공부할 수 있는 채질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무기력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나는 안돼’라고 모든 것을 귀찮아하면서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청년들에게도 있고, 자녀들이 성장한 후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어머니들, ‘은퇴하고 화초나 돌보며 할 일 없이 지내게 되자 금세 노인이 되어버렸다’는 한탄하는 노년층에도 나타납니다. 셀리그만에 따르면 쥐 같은 동물도, 그리고 인간도 무기력에 빠져들면 사소한 병으로 어이없이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고 합니다.
무기력의 반대 개념은 효능감입니다. ‘효능감’이란 자신이 노력하면 환경에 바람직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견해나 자신감을 갖고 환경에 적응하며 활기 있고 충실한 생활을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무기력에서 탈출하여 효능감을 가지고 살려면 먼저 작은 성공 경험을 해야 합니다. <숨은 붙어 있으니 살아야겠고-무기력의 심리학(하타노 기요오,이나가키 가요코 저)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나친 결석으로 유급을 거듭하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학생을 친구들이 끈질기게 접촉하여 겨우 등교하게 되었답니다. 마침 학교 문화축제의 준비 기간이라 연극의 무대 장치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겼답니다. 그리고 반대표로 출품한 포스터가 학교에서 일등으로 뽑혀 문화재 프로그램 표지로 채택되었답니다. 이렇게 하여 활기차게 학교를 다니다 그해 말 다음해에 전교학생회장으로 선정될 정도였답니다. 친구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는 효능감이 무기력에서 탈출하는 원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에 집착하는 것보다 자신의 강점에 주목하고, 니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삶에 의미과 가치를 부여하며 고정형 사고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성장형 사고를 가진다면 무기력에서 탈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신앙인도 '나는 전도도 할 수 없고, 나는 성격이 좋아 질 수도 없고, 나는 행복해 질 수도 없고, 나는 발전할 수도 없어, 나는 잘 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그럭저럭 차지도 덥지도 않게 신앙 생활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되는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며 “교회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하면서 체념하는 운명론자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이나 실패경험을 통해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환자에게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고정형 사고가 아니라 성장형 사고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 때 그는 물이 움직일 때 자기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예수님을 그 때 평생 잊지 못할 성공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5:8)” 38년 동안 고침받지 못한 병도 예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도 해방되었습니다. 어제 안되었다고 오늘도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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