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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넘어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448 추천수:3 112.168.96.71
2015-04-29 08:42:42

회의를 넘어

 

세월호 사건으로 아픔을 가슴에 담고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문에서 유가족 대표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는 “가끔 교회나 성당에 가면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직후 기울어 가는 배 안에서 2학년 3반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묵고 있던 방에 둘러앉아서 마지막으로 기도했습니다...그러면 하나님께서 배를 번쩍 들어서 옮겨 주셔야 맞지 않을까요...그렇게 절박한 순간에,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 기도를 왜 외면하셨을까요...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배가 기울어진 바로 그 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모여서 정말 간절한 기도를 했는데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순간 그 자리에 그들이 모여서 기도한 것은 잘한 걸까요 잘못한 걸까요.” 그는 작년 4월 16일 이후 딱 한 주만 교회에 갔다고 합니다. “나는 정말 신앙을 가지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00이에게 신앙이 정말 중요하다고 가르쳤는데, 그래서 늘 교회에서 좋은 일에는 앞장서서 많이 하라고 가르쳤는데,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을까. 당연히 신앙에 회의가 오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면 신앙의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2007년 8월 23일자 타임지의 커버 스토리는 "마더 테레사의 믿음의 위기"(Mother Teresa's Crisis of Faith)였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그녀가 마이클 반 델 피트(Michael van der Peet)라는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고 계신 듯 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침묵과 공허가 너무 커서 그분을 보려 해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들으려 해도 듣지 못하고 있으며 기도의 혀를 움직이고자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녀는 "하나님의 부재"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 수명의 한계 등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 사람은 회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박국의 회의처럼 “왜 정치. 종교. 사회 지도자들의 타락을 그냥 보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요나의 회의처럼 “왜 원수의 나라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회개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회의처럼 “왜 믿는 사람이 고통당하고 불신자에게 조롱당하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조리만 보고 회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천 번제를 드리고 솔로몬 성전을 건축하며 평생 갑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같은 사람도 말년에 종교적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회의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일의 시종을 깨달아 발견 할 수 있는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기에 인간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다 하시면 인간은 로봇에 불과한데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다스린다고 하는 이 세상이 왜 그렇게 불공평하며 불의와 부조리가 만연한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믿는 사람이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려 죽고 고통을 당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당하느냐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 관계없이 악인이나 의인은 똑같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실존적 회의에서 벗어나려면 첫째, 시각을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명령(계명)을 삶의 원칙으로 주셔서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그분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꼭두각시가 아니고 하나님은 인간의 도구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지고 다양한 문제 속에서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가지고 살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합니다. 일어난 한 사건만 보지 말고 멀리 보아야 합니다. 언젠가 최종적으로 공정한 평가를 받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니느웨나 바벨론이 무릎 꿇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셋째는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악인이나 의인이나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공정한 평가를 받는 내세가 있습니다. 악인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는 날이 있습니다(마 25:46). 이 세상 삶의 진정한 평가는 내세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릴 때 이해되지 않던 것도 어른이 되면 이해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 자리에 가보지 않고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내가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언젠가 “왜”라는 질문을 밝히 알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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