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돈
세종시 총기사건에 이어 화성에서도 총기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결국 돈이 부른 비극이라고 합니다. 전 동거녀의 아버지, 오빠, 동거남을 살해하고 자살한 범인은 갈라서면서 불태운 편의점 투자 지분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고 합니다. 화성 총기 난사 사건을 당한 가정은 본래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택지 개발로 보상을 받아 100억대 자산가로 서울에 사는 범인인 동생이 수년간 왕래가 없었다가 최근 재산 문제를 놓고 자주 형 집을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결국 범인은 재산권 분쟁으로 다툼을 벌이다 형과 형수, 관할 파출소장을 사살하고 현장에서 자살했답니다. 여성학자 오숙희씨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돈이 좋다’라는 책에서 여성문제 강연하다가도 돈 얘기만 하면 졸던 여자들이 다 벌떡 일어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적하기를 한국 사람이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되는 걸로 돼 있는 두 가지가 있는 데 그것은 돈과 성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돈 만큼 영향력이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웃고, 슬퍼하기도 하며, 결혼하기도 하고, 이혼하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자살하고, 도둑질하며, 사기 치고, 살인하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교회에서는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하지만 시장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돈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돈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돈은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돈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돈의 능력과 보장성이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읊조리기 쉽습니다. 돈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돈 자체를 일만 악의 근원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자로 사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지도 않고 부자를 정죄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윗이나 솔로몬, 욥도 부자였습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라고 말씀합니다. 돈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때 이것이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돈은 매력과 영향력이 있어 하나님 자리에 오르면 하루 종일 내려오지 않고 꿈에서도 돼지꿈으로 유혹합니다. 돈의 포로가 되면 돈 앞에 신앙도, 천륜도, 양심도 무릎 꿇고 돈에 뿌리를 박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세의 특징 중 하나를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3:2)”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결국 돈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자리를 돈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돈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유사품인 전지성과 전능성과 무소부재성을 가지고 있어 돈에 따라 인간 마음이 너울거립니다. 캐슬린 보(Kathleen Vohs)등의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에게 돈이라는 이미지를 주입시키면 그들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실험했습니다. 결과는 돈에 대하여 집착을 하면 기부를 잘 하지 않고,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시간당 수당을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경제학자일수록 돈도 재능도 잘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돈에 마음이 끌리면 덜 사회적이고, 덜 협조적이 된다고 합니다. 돈은 사람과 사람을 연합시키기보다는 분리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답니다.
돈은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돈에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의 사용을 자신에게 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그 혜택을 확산 시켜야 합니다. 성경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라고 했습니다. 찰스 피니라는 15년 동안 6억달러(약 7천 2백억원)를 익명으로 사회단체에 기부해 오다가 언론의 취재경쟁 끝에 드러났습니다. 그 때 그의 모습은 15달러짜리 시계를 15년이나 차고 다녔습니다. 단 두켤레의 구두로 10년을 버텼으며 신사복 두벌과 운동복 하나로 몇 년을 지냈는지 자신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생활은 검소했습니다. 그는 거금을 기부한 이유를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이 생겨서일 뿐"이라고 말했답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보다 어디에 썼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부자가 그 돈을 어떻게 쓰는지 알기 전에는 그를 칭찬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돈을 버는 목적을 성경은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4:28)”라고 말씀합니다.
무엇보다 돈은 생명을 죽이는 데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되어야 가장 가치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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