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까마귀가 독수리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목장에서 놀고 있던 어린양을 발로 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바라본 까마귀는 탄복을 하며, "정말 부럽구나. 나도 양을 잡을 수만 있다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수리나 나나 똑같은 새잖아. 그러니깐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양을 잡을 수 있어!” 까마귀는 나뭇가지 위로 힘차게 올라 양을 향해 내려갔습니다. 살찐 큰 양을 힘껏 채 가지고 잡아당겼지만 양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당황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복슬복슬한 털 속에 발을 깊이 넣어 잡아 당겼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양치기가 소리치며 까마귀에게 달려 왔습니다. 놀란 까마귀는 도망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양털 속에 깊이 박힌 발톱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분수를 모르는 까마귀 이야기입니다. 분수를 모르면 푼수가 됩니다. 우리 속담에 “송충이가 솔잎 먹고 살아야 한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라는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처지에 마땅한 선을 넘어서면 결국 생각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놀림을 받게 됩니다. 신앙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푼수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자들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부인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전기를 인정하기 전에도 전기는 존재했고, 미세한 세균을 현미경으로 보기 전에도 세균은 존재했습니다. 400년 전에는 사람들은 공기가 있다는 것을 부인했고, 200년 전에는 세균이 있다는 것을, 100년 전에는 전기가 있다는 것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천체를 보면 300만 개의 은하를 볼 수 있는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불과 6천개라고 해서 그것이 전부라고 우기면 지적 푼수에 불과합니다. 자연만 정직하게 관찰해도 하나님의 창조를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지구의 자전속도가 시속 1,600킬로미터가 아니라 160킬로미터라면 낮과 밤은 현재보다 열배 길어지고,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가까우면 생물은 타 죽을 것이고, 지구의 기울기가 23.5도가 아니면 4 계절이 생기지않고 해양의 증기가 남북의 끝으로 가서 얼음 대륙이 생긴다고 합니다. 만약 달이 지구에서 36만 8천 킬로미터가 아니라 8만 킬로미터만 떨어졌다면 모든 바닷물은 달의 인력에 끌려 대지는 잠기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지각이 약 3미터만 더 두꺼워도 공기 중의 산소는 모두 지각을 만드는데 쓰여서 생물은 생존하지 못하고 해양이 약 2.7미터만 더 깊어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산소는 모두 바닷물에 흡수되어 동식물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주의 질서 앞에 정직해 지면 생물 생존의 기막힌 환경이 우연이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의 솜씨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1:20)” 사람은 창조주 앞에서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꽃의 향기는 눈이나 귀나 입으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꽃의 향기는 코로 맡듯이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입이나, 눈이나,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영적 푼수가 아니라 분수에 맞게 산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출발하는것입니다. 분수에 맞게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지 않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게 하는 것을 꺼리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신분의 한계,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피조물의 자리에 서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푼수가 되어 선을 넘어설 때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지 않고 바벨탑을 쌓을 때 흩어짐을 당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권력이 있다고 왕으로 지켜야 할 선을 넘어 제사장이 하는 일을 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렸고 (대하26:16~26), 아들 낳았다고 분수를 잃고 제자리를 망각 할 때 '하갈'은 쫓겨남을 당하였습니다. 고라와 그 무리들과 다단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모세와 아론을 거스르고 스스로 높아지려다 망했습니다.(민16:3,7)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도 제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번제를 드리다 패가망신 당했습니다(삼상13:8~14). 분수를 모르고 탐욕과 집착으로 선을 넘으면 추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푼수들이 많으면 사회는 어지럽고 거칠며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이 많을 때 사회는 신사적이고 살맛이 날 것입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몫, 자기의 형편과 처지, 자기의 실력과 정도에 맞는 자리가 있습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 푼수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라고 말씀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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