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 담 허물기
오래전 ‘99%의 민중은 개·돼지 같은 존재다’, ‘신분제 사회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어떤 정책기획관의 발언이 온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뒤늦게 ‘취중에 논쟁을 벌이다가 나온 말실수’라고 변명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다시 ‘신분제 사회’가 되었고 인생은 ‘신분’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흙수저 금수저 타령을 하며 신분의 담은 철옹성처럼 견고하여 어찌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타락한 신분제도를 다 철폐하셨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인이 되면 신분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백정이었지만 장로님이 된 박성춘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당시 백정은 죽도록 일하지만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고, 호적에서도 제외되었으며, 상투도 매지 못했습니다. 의젓이 걷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깨끔발로 뛰어다녀야 하였으며, 어린이까지도 반말을 하였습니다. 만일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교수형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백정 박성춘이 심한 병에 걸려 에비슨 선교사님으로부터 치료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즉시 동료들에게 전도하여 곤당골 교회(1983년 설립)가 백정들로 채워지자 양반들이 교회를 분리시켜 홍문섯골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신분이 평등하게 되었음을 깨닫고 다시 합쳐 승동교회를 세웠습니다. 백정이었지만 승동교회 장로님이 되어 독립협회에도 참여하였고, 아들은 세브란스의학교(제중원) 제1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신분 차별도 예수님께서는 폐지하였습니다. 신분 차별을 받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멸시를 받고, 물건 취급을 받았습니다. 숫자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여자에게 말하지 말라. 여자는 생각이 없는 존재들이다." 쇼펜하우어 같은 사람은 여성에게는 영혼이 없다고까지 헛소리를 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남성에 의한 여성은 폭력적 차별과 지배를 받았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도 대소변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변덕이 심해서, 창의력이 부족해서 여자는 열등하다고 했습니다. 19세기에 와서 여자들의 참정권이 생겼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칠거지악에 묶여 여성들은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고, 남편이 첩을 둔 것을 시기만 해도 칠거지악에 걸려 쫓겨났습니다. 만약 쫓아내지 않으면 남편이 곤장 80대 형에 처해졌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는 김점동입니다. 가난한 그녀의 아버지는 집 근처에 사는 아펜셀러 선교사를 만나 고용되어 서양문명을 일찍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조선의 여자들을 위해 이화학당을 설립하였는데 지원하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설립자 스크랜턴은 병자나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와 공부시켰는데 김점동은 네 번째 입학생으로 아버지 손에 이끌러 온 최초의 학생이었습니다. 홀 부인은 그녀를 미국에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유학시켜 뉴욕 리버티 공립학교와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 (후의 존스홉킨즈 대학)에서 공부하여 1900년 6월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인 최초 여성 의사가 되었습니다. 박에스더로 개명한 그녀는 ‘한국 여성이 한국 여성을’ 진료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서울 보구여관과 평양 기홀 병원을 오가며 진료 활동을 폈고, 평양 맹아학교와 간호사 양성원 그리고 전도부인을 양성하는 여자성경학교 교수로서도 섬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신분 차별의 악습이 무너집니다.
장로교 역사에서 유일하게 세 차례 총회장을 역임한 이자익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경남 남해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9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1세 때 어머니마저 여의고 행상 차림을 하고 전북 김제군 금산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일 부자인 조덕삼 옹 집에 들어가 머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금산교회 장로 피택에서 머슴인 이자익이 되었습니다. 상놈과 양반이 가리던 때 주인과 머슴이 경쟁하여 머슴이 장로가 되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입니다. 이때 조덕삼 옹은 조용히 일어나 교인 앞에 서서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후에 장로가 된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영수를 신학 공부를 후원하였고 이자익은 훌륭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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