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정치과 신앙인
1971년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필립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했습니다. 대학생 24명에게 대학 건물 지하의 가짜 감옥에서 2주간 각각 죄수와 교도관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육체적, 정신적 장애가 없으며 과거 범죄나 약물 남용 이력이 없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었으며, 모두 중산층 가정 출신의 좋은 교육을 받은 남자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도관 대학생들은 점점 가학적인 행동을 보인 반면, 죄수 대학생들은 극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린 나머지 6일 만에 실험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교도관 자원자들은 죄수 자원자들에게 맨손으로 화장실을 청소하게 하고, 체벌과 기합 등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성적 모욕까지 주었으며, 견디다 못한 죄수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소화기를 써서 이를 진압했습니다. 누구나 역할이 달라지면 본연의 성품과는 달리 순식간에 악마처럼 폭력적이고 잔인해지는 것을 ‘루시퍼 효과(Lucifer Effect)’라고 합니다. 과거의 나치 시절 유대인들이 처한 홀로코스트, 일본 군인들의 난징 학살 사건, 이라크 전쟁 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 병사가 벌인 잔학성 등은 대부분 보통 사람의 인성을 가진 사람이 특별한 환경이나 상황, 사회적 시스템 하에서 양심과 이성이 마비되고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혐오정치를 하는 정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권에 들어가기 전에는 얌전하고 양심을 지키려고 애쓰는 정상적인 사람인데 정치권에 들어가는 순간 상대방 죽이기 정치에 몰입하며 표독스럽게 변한 것입니다. 정치는 한 국가가 좋은 방향으로 상생(相生)할 수 있도록 타협정신을 발휘해 가장 최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입니다. 상대방을 죽이는 혐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5년 내내 권력을 잡을 궁리만 하다가 권력을 잡으면 천하를 다 가진 것처럼 칼자루를 휘두르려고 합니다. 노동자, 여성, 외국인, 장애인, 특정 지역 등 특정 집단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공격하는 혐오 정치는 상대를 절멸시키겠다는 심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혐오 정치가 극단화되면 다른 집단 구성원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비인간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편견과 혐오는 혐오 표현으로, 차별로, 증오범죄로, 집단학살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와 차별의 해악을 다섯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격적 모멸감을 줍니다. 둘째. 사회 구성원으로서 평등한 지위가 훼손됩니다. 셋째, 개인이나 소수 집단을 넘어 빠르게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넷째, 결국 소수자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모든 피해가 집단 전체로 향한다는 것이고 마지막 다섯째는 이러한 혐오가 물리적 공격, 즉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폴란드의 법학자였던 라파엘 렘킨은 제노사이드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제노스(genos)는 그리스어로 인종이라는 뜻이고 사이드(cide)는 학살이라는 뜻입니다. 인종학살로까지 발전하는 단계를 여덟 단계로 소개합니다. 첫째, 차이를 내세워 피아를 구별하고, 둘째, 상징화 작업을 통해 적으로 분류된 이들의 미개함을 찾으며, 셋째, 법을 통해 차별의 근거를 강화하고, 넷째, 본격적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비인간화, 탈인간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차이가 차별로, 차별이 혐오로 발전하게 되면, 이어서 조직화, 강제 격리, 강제 이송 그리고 최종적으로 물리적 파괴의 단계를 거쳐 제노사이드란 끔찍한 범죄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집시, 장애인들까지 무려 1100만여명을 혐오 학살한 나치는 이런 제노사이드의 단계를 충실히 따랐답니다.
히틀러는 총칼로 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사람이 아닙니다. 독일 국민은 1932년 12월 총선에서 44%의 표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히틀러가 광신주의자인 것은 맞지만 그는 정치인으로 독일 국민의 용인에 힘입어 한 걸음, 한 걸음 권력을 확고하게 하며 국민의 동조와 협력, 방조 속에서 전대미문의 혐오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최호근 교수는 독일인들에게는 홀로코스트를 막을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기회는 선거였고, 두 번째로 적극적으로 연대해 인종차별법의 제정을 막을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시점에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답니다. 차별과 혐오로 나아가는 사회의 방향을 공론화하고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그 기회를 모두 놓쳤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답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혐오를 부추기고 혐오하는 세력을 규합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타인을 혐오할 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혐오하며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의 대상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백성끼리 앙심을 품거나 원수 갚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다만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나는 주다(레19:18)”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