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겸손과 신앙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온종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저녁이 되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놀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루살이가 “내일이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이 오는데 그것이 내일이야”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설명을 들었지만, 내일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메뚜기는 개구리와 즐겁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지자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날씨가 추워지니 이제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메뚜기가 “내년이 무엇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끝난 후 날이 따뜻해지려고 할 때 오는 게 내년이야”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메뚜기는 혼자 말했습니다. “정말 이상하네. 하루살이는 왜 내가 아는 내일을 모르고 나는 왜 개구리가 아는 내년을 모르는 것일까?”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생명의 한계,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사람에게 위험하고 해로운 망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산타클로스나 이빨 요정에 대한 어린 아이의 동화적 사고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전문가가 말하는 망상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해로움을 주는 망상이 아니라 많은 인생살이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것입니다. 왕립 정신의학자 협회의 회장이었던 앤드류 심스 교수는 “종교적 믿음과 영성의 유익한 효과는 정신의학과 의학 전반에서 가장 잘 유지된 비밀 중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은 안녕, 행복, 삶의 만족, 희망, 낙관주의, 삶의 목적과 의미, 높은 자존감, 슬픔에의 적응, 큰 사회적 지지, 적은 외로움, 우울증에서 빠른 회복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도킨스는 이런 것을 알지 못하거나 무신론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하기 애써 무시한 것입니다. 스티븐 호킹은 “천국이나 내세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정 이야기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술은 과학적 진술이기보다는 무신론을 믿는 그의 믿음일 뿐입니다.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인 존 레녹스는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서 ‘숙모 마틸다와 케익’의 예화를 듭니다. 저자의 숙모 마틸다가 케익을 구웠는데, 그것을 분석하도록 세계의 정상급 과학자 그룹에 제출했다고 상상해 보라고 말합니다. 생화학자들은 그 성분에 포함된 단백질과 지방 등의 구조에 관해 알려주고, 화학자들은 케익에 내포된 요소들에 관하여 알려주며, 물리학자들은 기본적인 분자들에 대하여, 수확자들은 정밀한 방정식을 알려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케익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케익이 왜 만들어졌는지는 세계 최상급의 과학자들이 아무리 조사해도 그녀가 왜 그것을 만들었는가를 말하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학의 한계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는가?”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와 같은 것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합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어느 날 공부하는 동안 대학 만찬에서 노벨상 수상자의 곁에 앉게 되었답니다. 그는 그의 폭넓은 연구가 과연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성찰로 이끌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물었답니다. 그 과학자가 자신의 질문을 받고 불편한 기색을 보여서 즉시 뒤로 물러났답니다. 하지만 식사가 끝날 즈음 그는 자신을 그의 서재로 초대했답니다. 저자와 더불어 고참 학자들도 두세 명 초대되었답니다. 그는 “레녹스, 자네는 과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싶은가?”하고 물었답니다. “그렇습니다. 교수님”하고 저자가 대답했답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증인들 앞에서 자네는 하나님에 대한 유치한 신앙을 포기해야 하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신앙이 자네를 지적 장애자로 만들 테고, 자네는 동료들에 비해 뒤처질 걸세. 한 마디로 자네는 성공하지 못할 걸세.” 저자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 둘레에 서 있던 분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성경적 세계관이 훨씬 더 풍요롭고 그 진실성의 증거가 더욱 확실하기 때문에 나는 죄송합니다만 위험을 감수하고 그 세계관에 충실하겠습니다.” 바루크 아바 셀레브의 <노벨상 100년>에 따르면 1901년부터 2000년까지 노벨상을 받은 인물의 65.4%가 자기 종교를 기독교로 밝혔고(423개 상), 크리스천이 노벨평화상의 78.3%, 화학상의 72.5% 물리학상의 65.3%, 의학상의 62%, 경제학상의 54%, 문학상의 49.5%를 각각 수상했다고 합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저자를 위협했던 “과학자로 존경받고 싶으면 꼭 무신론자가 되어야 한다”은 말은 틀렸다고 말합니다. 교만한 자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열기 닫기
| 쪽지 보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