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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비 유감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929 추천수:2 112.168.96.71
2001-10-27 15:28:15
늦가을 비는 계절의 매듭을 만듭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그렇게 화려하던 단풍도 늦가을 비가 내리면 초라하고 힘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가을비는 봄비와는 다릅니다. 봄비는 생명을 움트게 하는 비라면 가을비는 생명을 마무리하게 하는 비입니다. 똑같은 물이지만 생을 만들기도 하고 죽음을 만들기도 하듯이 비 역시 계절과 상황에 따라 그 역할을 다르게 합니다. 봄비가 온 후 세상은 파릇파릇하게 아지랑이 번지듯 연녹색의 작은 파도를 만들어 사람의 마음에 활기를 불어 넣어줍니다. 가난한 자들도 생기를 얻습니다. 병든 자도 희망의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늦가을 비는 아름다운 단풍들의 물결을 감상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홍수에 쓸려 가는 쓰레기 보듯 삭막하게 합니다. 부자들에게는 휴식의 비일지 몰라도 가난한 자에게는 근심을 더하게 하는 비이고 병든 자들에게는 초조함을 더하는 비입니다.

늦가을 비는 단풍의 평균화를 이루는 비입니다. 빛깔 좋은 단풍도, 모양 나는 단풍도 가을비 내리면 모두 구별이 없습니다. 저마다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잎의 모양은 모양대로, 잎의 빛깔은 빛깔대로 그 멋과 아름다움이 있지 나무로부터 떨어져 가을비 눅눅한 거리를 뒹굴 때는 아무도 그 잎을 보고 감탄사를 붙이지는 않습니다. 가을 비 맞고 떨어진 단풍은 눈 크기로 키 크기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비 맞은 단풍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도 가을비 오기 전에 떨어진 단풍은 걷는 낭만이라도 주지만 비속에 떨어진 단풍은 하루 밤사이에 모든 잎을 잃어버리고 헐벗은 나무 마냥 사람의 시선을 받기에는 추하고 거추장스러운 주인 없는 시체일 뿐입니다.
늦은 가을비는 단풍의 평균화를 이룰 뿐 아니라 사람의 시각의 평균화도 이루어냅니다. 늦가을 비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거리를 거닐며 아름답게 익은 단풍, 조금은 덜 익은 단풍, 익기는 익었지만 멋없이 익은 단풍 등을 구별하여 감상하는 눈이 있었지만 비가 온 후에는 그런 시각도 다 없어집니다. 비 맞은 단풍은 물론 단풍이 다 떨어진 나무를 보며 아름다움이나 더 아름다움이나 덜 아름다움을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떨어진 단풍을 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이 가 주워 책갈피에 넣으려 하면 몰라도 시체를 보며 미추를 구분하지 않는 것과 같이 그저 길가에 흩어진 단풍을 보며 아름다움과 추함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비를 맞고 떨어진 단풍에는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담을 공간이 없어집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물은 사람 스스로 생명을 불어넣고 그 속에서 미추(美醜)의 시각을 만들어 내지만 살아 있는 생물이 죽을 때는 미추의 시각은 평균화되어 버립니다. 죽은 고기를 보며 아름다움을 말하는 사람이 없고 죽은 인간의 시체를 보며 아름다움을 논하는 사람이 없듯이 말입니다. 생물은 살아 있을 때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생명이 떠나면 단지 시체일 뿐입니다.

늦가을 비는 단풍에 있어서 소유의 평균화를 만들어 냅니다. 가진 자가 더 갖고 없는 자는 더 빼앗기는 세상 사람들의 욕심의 법칙은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경제로 통하고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을 갖게 하는 자본이 신이 되는 법칙도 소용이 없습니다. 늦가을 비가 오면 나무는 내어놓기 싫어도 모든 잎을 다 내어놓아야 합니다. 봄의 수고와 여름의 고뇌를 말하며 아무리 애착을 가지고 소유권을 주장하여도 가을 비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무는 애지중지 키운 잎도 생명처럼 귀중한 잎도 다 내어놓고 헐벗은 몸으로 겨울 바람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땅을 많이 차지한 나무도 땅 한 평 없이 셋방살이하는 나무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기 있어 수많은 사람이 구경왔던 나무도 매력 없어 한 사람도 시선을 받지 않았던 나무도 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하고 내어놓아야 합니다.

욕심을 부린다고 떨어진 단풍이 다시 붙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 화려한 단풍을 아무리 많이 쌓아 놓아도 비 맞은 단풍은 냄새만 풍길 뿐입니다. 떨어지는 단풍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소유하고 싶어도 그 나무에 영원히 붙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정들었어도 나무는 스스로의 삶을 위해 단풍을 밀어내고 맙니다. 자기 살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처럼 나무의 몸부림 앞에는 단지 단풍은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풍은 단풍으로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풍에게 있어서는 나무가 수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튼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든, 짧은 세월로 지식과 경험이 없든 가을 비 오면 떠밀리기 전에 나무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단풍이 나무를 소유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할 뿐입니다.
늦가을 비는 단풍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평균화를 이루어 냅니다. 미웁다고 적게 살고 고웁다고 오래사는 것이 아닙니다. 늦가을 비가 오면 아무리 건강한 나무에 매달려 있어도 떨어지게 되고 떨어지지 않고 홀로 붙어 있다하여도 아름다움보다는 애처로움이 있을 뿐입니다.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산 것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것 같으나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사람들의 시선이 떠난 지는 오래고 나무에게는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찬바람에 몸부림치며 정든 나무에 붙어있으려 하여도 추한 몽고로 상처만 더 깊어갈 뿐입니다. 계절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거슬리면 힘겨울 뿐입니다. 늦가을 비는 하나님의 법칙을 알려주기에 충분합니다. 순응함으로 행복한 하나님의 법말입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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