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집사님에게
-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272 추천수:0 112.168.96.71
- 1999-08-15 07:26:03
사랑하는 집사님, 진정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싶은 집사님, 하늘의 얼굴은 이미 가을 표정을 그리고 있지만 땅은 여전히 여름 옷을 입고 대지의 호흡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지금쯤 농촌 들녘에는 허수아비 세워지고 마당에는 고추들이 즐비하게 땡볕을 그리며 누워 있겠지요. 집사님을 뵙지 않은지도 오래된 것 같습니다. 늘 마음 한 쪽 구석에는 집사님과 함께 신앙 생활하였던 옛 추억들이 걸려 있지만 그것을 꺼내어 놓고 밤새도록 함께 이야기하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느 시인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는 봄날 툇마루에 앉아 친구가 너무 그리워 맨발로 십리를 갔다는데 저에게는 그런 낭만적 열정이 없나 봅니다. 그 옛날 겨울이면 손수 장작더미 태우며 성가 연습을 시키던 집사님, 아무리 바쁜 여름철에도 예배만큼은 빠뜨리지 않고 나오시던 집사님, 집사님은 무엇이 진실인가 보다는 무엇을 진실로 만들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 시대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를 늘 보여 주었습니다. 진실을 검증한다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포함된 내용을 행위로 입증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관성있게 집사님은 보여 주었습니다. 집사님은 늘 말보다는 삶으로 진실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여름 성경학교를 할 때면 집사님은 한달 동안 밤마다 아이들을 위하여 특별 기도를 하였습니다. 성경학교 때이면 아이들보다 선생님들이 즐거웠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집사님 때문이었지요. 성경학교 기간 내내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며 오후 시간이 끝나면 참외, 수박 원두막으로 복숭아 과수원으로 선생님들에게 과일 파티를 열어 주었던 집사님의 마음을 선생님들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지만 성경학교가 끝나면 해마다 빠짐없이 한 밤 해변의 위로 잔치를 집사님은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넓은 가슴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성탄절 발표회 준비 때면 고구마와 밤을 삶아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성탄절 트리를 만드는데 정부에서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난감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집사님은 집 뒤에 있는 대나무를 한 아름 베어 대나무 트리를 만들었던 것 기억하시지요. 그 때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배당 문에 아치로 늘어선 대나무 그리고 그 위에 눈이 쌓인 그 해 환상적인 크리스마스를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탄절 전야 발표회가 다 끝난 후 눈 덮인 산과 들을 걸으며 새벽송을 돌던 때를 기억하시지요. 집집 마다 불을 켜 놓고 기다리던 성도님들 집에서 찬송을 드리고 교회에 돌아 왔을 때 집사님은 예배당 눈덮인 마당에서 둥그렇게 모여 찬송과 기도를 한 후 저희들에게 만연필 하나씩을 선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꼭 신앙인의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라고 했지요.
집사님, 집사님은 지금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토담집 교회를 부수고 벽돌로 예배당을 지을 때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기뻐하시던 집사님의 얼굴이 지금도 선합니다. 예배당 종탑은 꼭 자신이 세워야 한다며 종탑에 올라가 일하시던 모습이, 그리고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며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를 연거푸 찬양하던 집사님의 찬양이 지금도 제 마음 한 구석에서 괴로울 때마다 메아리 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시는 지요. 교회가 다 완공되고 처음 봉고라는 차가 이 땅에 나왔을 때 집사님은 아이들을 더 많이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해서는 이 차를 사야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남모르게 얼마되지 않은 논이지만 그 논의 일부를 팔아 차를 샀던 것을 저희들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때 집사님의 십자가의 수고는 모른체 철없이 교회에 차가 생겼다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것은 당시 집사님의 재산 반보다 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숙연해 졌습니다.
가난하지만 가난이 결코 짐이나 걸림돌이 되지 않았던 집사님, 일하지만 자신은 한번도 내세우지 않으셨던 집사님, 오늘날 선을 행하는 것도 또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마치 무게로 팔리우는 책처럼 규모와 양으로 생명과 삶이 평가되고 명예와 편리, 안락, 성장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을 살아야 할 우리에게 일찍이 집사님은 아름다운 향수 심어 주었습니다. 교인이 많아지고 교인들이 집사님을 좋아하시던 어느날, 장로 피택을 앞에 두고 집사님은 홀연히 교회를 떠났습니다. '성공한 목회를 위해 마케팅 책과 이미지 메이킹 책을 필독해야 한다'는 교회 성장가들의 말을 들은 오늘 집사님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더욱 생각납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내가 져야할 것은 십자가 뿐, 우리는 선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라는 말씀이...●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1999.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