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장애될 수 없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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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772 추천수:3 112.168.96.71
- 1999-04-25 06:58:11
[캐나다 울린 부성애]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선천적 장애로 날마다 고통에 울부짖는 딸을 5년 동안 보다 못하여 뇌성마비 장애인 딸을 살해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12살 뇌성마비 딸의 아버지 로버트 래티머는 93년 10월 수 차례의 대수술을 받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먹지도 못한 채 날마다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딸을 보다 못해 자신의 트럭에서 가스 중독사 시켰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경찰에서 그는『죽이는 길만이 딸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며 고개를 떨구었다고 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알려주는 수많은 이웃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용기가 있었다면 내가 먼저 딸아이를 죽였을 것』이라는 아내의 절규가 법정을 울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방법원은 그를 2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했고 언론과 많은 국민들은 래티머의 선처를 호소하며 변호인단은 법적용과 절차의 잘못을 들어 항소했습니다.
그래서 고등법원 재판부는『모든 증거는 래티머가 딸을 너무 사랑했고 딸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도록 바라는 간절한 아버지 마음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1년형이라는 파격적인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가장 약자인 장애인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처사』라며 반발했고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해 결국 10년형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아무리 큰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도 정상인처럼 생명은 존중받아야한다는 사람들과 『딸의 고통을 무한정 지켜보는 것보다 차라리 감옥을 선택하겠다』는 장애인을 둔 가정의 고통에 대한 동정심이 법정에서 대립한 사건이었습니다.
장애인을 둔 가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한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장애인이 겪게 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장애인이 가진 결함이 장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고 인생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장애인의 어려움은 지체 장애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애가 장애로 인한 의사소통의 장애와 고립화입니다. 실제적인 어려움으로는 장애로 인하여 사회의 저소득층이 되어 신체적, 정신적 장애와 경제적 빈곤 뿐 아니라 사회적 소외 및 부적응의 불이익까지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비장애인 만을 위한 사회가 아님을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러나 장애인도 함께 사는 사회로 변모되는데는 적은 관심을 갖습니다. 장애인이 전혀 장애 때문에 장애를 느끼지 못하도록 사회 구조가 바뀐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좀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힘있는 자, 가진 자, 능력 있는 자의 편에서 발전해 왔습니다. 문명의 발전은 더 많은 장애자를 만들어 내었고 장애자가 살기에 더 장애가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21세기는 약자를 위한 배려 문명으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도 장애를 느끼지 않게 하는 사회 구조의 변화, 장애인이 경제적으로 인간답게 살게하는 고용환경, 자신의 능력 때문에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 시설의 확보, 장애인들의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게 하는 각종 재활 프로그램의 개발, 장애인 당사자들과 가족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지 등 통합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의식 전환입니다. 최근에 들어와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내면적으로는 거부적, 비 호의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애인을 둔 가족 마저도 자신의 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형벌로 받아들여 자학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애인 역시 일반인과 똑같이 한 영혼을 가진 가장 고귀한 생명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장애인을 소외시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력 장애인 이삭을 축복의 전달자로 사용하였고, 시력 장애를 가진 바울을 세계 선교를 위해 사용하였고, 지체 장애인 야곱에게 축복의 증거를 보여 주었으며, 언어 장애인 모세를 사용하였습니다. 장애는 결함이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장애와 비 장애는 단지 시간과 공간의 차이일 뿐입니다.
한 손 가진 사람은 한 손 가진 사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두 손 가진 사람은 두 손 가진 사람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열등적 요소, 행복의 판단 요도도 될 수 없습니다.
발 하나인 사람이 꼭 발 두 개인 사람처럼 살아야 행복하다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얼마전 팔 다리가 없는 중증 장애를 극복한 [오체 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 씨가 장애인의 날(20)을 앞두고 방한하였습니다. 그는 와세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장애인과 고령자들을 위한 [마음의 장벽 없애기(Barrier Free)]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출산 후 그의 어머니는 처음 그를 보고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4년간 담임을 맡았던 다카기 교사는 휠체어를 못 타게 했고, 반 아이들에게도 특별 대우를 하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남의 도움 없이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니는 법을 배웠습니다. 술에 취한 친구를 전동 휠체어에 태워 지하철까지 바래다줄 정도였습니다.
그는 "신체는 불만스럽게 태어났지만, 인생은 행복하다"는 자서전을 써서 일본 열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그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 하지만 장애자란 생각은 한번도 안해 봤다. 난 성격상 튀는 놈인가 보다." “처음부터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생활이 불편하지 않다”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말라깽이, 뚱보가 있듯 팔다리 없는 것은 나만의 개성” ♥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99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