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명절인 설이 되었습니다. 설이라는 말은 새해 첫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슬프다' 혹은 '삼가다'란 뜻을 가진 '섧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즉 새해 첫날 한 해의 농사를 위해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그런데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려온 명절을 서러운 날로 본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해서 "설"이란 해가 바뀌어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물이 '설다' 손이 '설다' 등과 같이 한 해를 새로 시작해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랍니다.
그 말의 기원이야 어떻게 되었든 설이 되면 사람들은 떡국이나 만두를 먹고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였습니다. 으레 홀로 다니지 않고 또래들이 어울려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세배를 하고 나면 어른들은 한 해의 소원을 물으며 세뱃돈과 함께 덕담을 하였습니다.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한 낯이 되어서야 세배는 끝이 나고 이집 저집에서 먹은 음식으로 배는 남산처럼 되었습니다. 세배가 끝이 나면 마을 어른들은 이곳 저곳에 모여 윷놀이를 하였고 아이들은 연날리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기와 집도 있고 초가집도 있고, 연을 날리는 양지바른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고향은 옛사람도 없고 옛 산천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설이 되면 고향을 찾습니다.
고향에 대한 애착은 아마 이탈리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제일일 것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해외에서 만나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면 대개가 이탈리아인이라고 말하기 앞서 로마 사람, 밀라노 사람, 또는 시칠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인들이 민족 감정을 느끼는 경우는 오직 국가 대항 축구 시합이 있을 때뿐일 정도로 고향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대부분 기업인들이 투자를 할 때도 고향이 아닌 곳에는 하지 않을 정도로 민족애보다는 애향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도 이탈리아 사람 못지 않게 고향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삶의 구석구석, 고향이 영향을 주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고향은 우리 민족의 삶의 뿌리가 이미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우리 민족이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이 국민 10명 중 7명이라 하니 명절이 되면 온 나라의 도로가 차량행렬로 가득 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소에 5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23시간에 걸쳐 갔다고 합니다. 올해도 또 가시냐고 물었더니 올해도 또 간다고 합니다. 대부분 막상 가보면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불편하고 한 달만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지만 그래도 해마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향하여 집을 떠납니다. 고향은 삶의 편리보다는 향수로, 추억으로, 삶의 근거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의 아버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닮아 건달인 아들 유방이 마을에서 말썽만 피우더니 어느 날 졸개 건달들을 데리고 가출을 했습니다. 한동안 소식이 뚝 끊어졌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이 황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태상황이라고 불렀습니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지만 갑자기 좋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태상황이 되었으니 고향을 등지고 타향에가 구중 궁궐 속에 갇히고 만 것입니다. 사람 사는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유방의 아버지는 고향이 그리웠습니다. 유방의 아버지도 고향에 있을 때 자신만큼이나 건달로서 어머니 속을 썩였습니다. 허구한 날, 백정 등 하찮은 무리배들과 어울려 닭. 개싸움을 붙이는 노름을 하거나 공차기 등으로 보내었습니다. 궁궐이 아무리 잘먹고 호화로운 생활일지라도 그것들을 하지 못하니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유방의 아버지는 늘 탄식하며 살았습니다.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유방은 무식하긴 해도 나무랄 데 없는 효자였습니다. 어느 날 신하를 불러 요즘 아버님의 표정이 어두우신 데 그 까닭을 알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신하가 돌아와 "태상황께서 고향 풍현이 그립다며 그곳에 되돌아 가시고자 합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앙궁 한 곳에 고향 거리를 만들고 고향 사람들을 죄다 불러 올려 아버지와 함께 옛 그대로 어울려 놀게 했습니다. 그제야 태상황은 옛 즐거움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사는 곳이 좋다고 해도 사람들은 고향의 향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향은 지친 영혼에게 주린 낭만을 채워주는 그리움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고향도 정신적인 망명자인 현대인에게 있어서 결국 찾았던 고향은 기억으로 존재하는 고향일 뿐 참된 안식처가 되지 못합니다.
일평생 실향민으로 살았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뿌리 내리고 살 곳이 없는 근원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향을 찾아도 여전히 실향민인 우리가 참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고향은 아버지 계시는 하늘 나라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믿음의 형제가 만나는 그 날이 우리의 참된 설입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 11:16)"●
섬기는 언어/열린교회 /990214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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