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한 해가 벽에 걸린 달력의 끝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해를 걸어오면서 여러 가지 실패의 경험으로 마음이 체념과 절망, 불안과 고통의 색으로 변한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실패(失敗)나 패배(敗北)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지수(指數)로 나타낸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좌절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상태를 제로(0), 혹심하게 느끼는 상태를 마이너스 10, 오히려 발전적 계기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플러스 10으로 한다면, 유태인계가 +5, 영국이나 독일 등 게르만계 미국인이 +3, 라틴계 미국인이 -2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태계는 그 만큼 좌절감이 적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한국인의 패배 감각 지수를 측정한다면 아마도 마이너스 후반부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민족은 패배를 체념이나 절망, 자조(自嘲)로 합리화시키곤 했습니다. 패배는 끝장이거나 끝장에 가깝다는 특유한 패배 감각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실패라는 것은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어서 결코 우리를 그 실패의 순간에 묵어두지 않습니다. 실패한 사람이 그 순간에 자신을 묶어둘 따름입니다. 시간은 역류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시간은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항상 현재의 시간입니다. 흙탕물이 조금 지나면 깨끗해지듯이 우리에게 흘러오는 시간은 결코 실패로 얼룩진 과거의 시간이 아닙니다. 과거의 경험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깨끗한 시간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한 해 실패의 고통이 있다할지라도 이제 그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 속에 떠내려 보내고 새로 일어서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헬렌켈러는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였지만 그녀는 실패의 추억과 실패의 현장에 자신을 묶어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정신적 유산을 인류에게 남겼습니다. 안인슈타인은 대학입학 시험에 떨어지고 남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그는 위대한 과학자로 끝을 맺었습니다. 링컨은 초등학교에 9달 밖에 못다니고 주지사, 대통령 등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하였지만 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과거를 보며 실패한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갈릴레오는 양복점 직공으로, 이스라엘 베긴 수상은 폴란드 빈민촌의 장난꾸러기로, 이집트의 사다트는 가난한 농부로 반역죄를 지은 사람으로 살았지만 그 어느 누구하나 그들의 실패를 인생 실패로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1914년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 66세 미국 뉴저지주의 웨스트 오래곤에 있는 그의 실험실이 몽땅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 때 그는 아들에게 "잿더미 속에도 위대한 가치가 있다. 나의 모든 실수는 다 불타버렸고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교사가 머리가 너무 나빠서 아무리 가르쳐도 안된다고 했고 그는 11살 때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의 시간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구를 발명하는데 12만번이나 기도하고 1만번이나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시간은 흙탕물이 아니라 새로운 물로 우리에게 오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를 기다려 주지도 않습니다. 흘러간다고 해서 무한한 것은 아니고 흘러 가버리면 다시 담을 수가 없습니다. 담는다고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가치있게 사용하는 자에게 시간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달리는 시간의 고삐를 잡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임금님이 왕세자비가 될 자부(子婦)를 얻기 위하여 온 나라 곳곳에 방을 붙이고 귀한 집안의 규수들을 모아서 일일이 심사를 했습니다. 그 중 10명을 뽑아 임금님은 쌀을 담은 밥그릇을 제각기 하나씩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열흘동안 먹고 지내다 오너라"고 했습니다. 어떤 처녀는 죽을 쑤어 먹고, 어떤 처녀는 아껴 먹었습니다. 궁전에 돌아 온 처녀들은 다 비실비실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처녀는 아주 얼굴이 환하고 예뻐졌습니다. 그녀는 그 쌀로 떡을 만들어 장사를 했습니다. 거기서남은 이윤으로 쌀을 사고 또 떡을 만들어 팔고 해서 배불리 먹고 임금님도 맛보시라고 떡을 새로 빚어 가지고 왕궁에 들어 왔습니다. 당연히 그 여인이 세자빈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파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시간을 창조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시거니 헤리스'는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산다. 승자는 시간을 붙잡고 달리고, 패자는 시간에 쫓겨서 달린다. 승자는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패자는 이기는 것도 은근히 염려하며 산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주일로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항상 새로운 세계를 향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올 한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올 한해 실패했다고 슬퍼하며 포기하거나 집착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다시 일어나십시오. 우수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3대 문제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인생아 너는 어디서 왔느냐?" "인생아 너는 무엇을 하느냐?" "인생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 그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분명한 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 한해의 사진을 붙들고 멈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진을 찍어 내야 합니다. 성경은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6)"라고 시간과 인생의 주인이 주님인 것을 말씀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 /981227/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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