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는 목사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전 음식점에서 근 일년만에 우연히 만났는데 밝은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아직 그 무서운 고통을 견디기에는 버거운 3돌 된 아들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감기 증세가 계속있어 병원을 돌아 다녔는데 삼성의료원에 가보니 백혈병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믿기지 않았답니다. 그렇게도 잘 놀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백혈병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살리고 싶어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후 아이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참으로 눈이 맑은 아이였습니다. 작년 가을 그 아이와 함께 하루의 여행을 하였습니다. 아빠를 그렇게도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였습니다. 재롱을 피우며 하루 종일 웃음을 주었는데 그 아이가 이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믿음의 식구들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는 눈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부모의 가슴에 눈물을 주고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왜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에게 고통을 주시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원망할 만하기도 하고 통곡할 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고통도 숨어 있는 의미가 있음을 우리는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신자가 당하는 고통은 죄의 삯(롬6:23), 정죄(롬5:16)로 당하는 고통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재판관이 법정에서 형벌을 내리듯 죄의 대가로 받는 고통입니다. 성도가 받는 고난은 외형적으로는 불신자들과 비슷하지만 그 의미가 다릅니다. 그 고통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통에는 일반적으로 세가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징계로서의 고난입니다.
성경은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잠3: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실수하여 바셋바라는 유부녀와 간음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나은지 얼마 안되어 그 아이는 병이들었습니다(삼하12장). 하나님께 밥을 먹지 않고 밥낮으로 땅에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수근거립니다. 결국 그 아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범죄하였습니다. 그는 잘못을 뉘우치며 인내함으로 그 고통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혈기를 부리며 범죄하였습니다. 그는 징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그 땅에 들어가고 싶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 3:26)"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연단으로서의 고난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 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내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단으로 통과하는 고난은 마치 광석을 불에 녹여 불순물을 제거하듯이 성도를 단련시켜 신앙의 용사로 만들기 위한 고통입니다. 어떤 특정한 죄가 없지만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훈련시킵니다. 요셉은 특별한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웠고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약속을 성취하였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받는 자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질병을 위해 3번이나 간구하였지만 번번히 거절당한 바울에게 하신 말씀처럼 자신에게 주신 은혜가 족한 줄 알고 인내함으로 그 고통의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이 연단의 결과는 보다 성결하고 장성한 신앙을 갖게 하고 나아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됩니다(벧전1:7).
셋째는 자발적으로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을 안 당해도 되지만 성도 스스로 믿음으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당하는 자에게 성경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4)"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고난은 믿음의 사람들이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살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성도가 신앙을 포기하면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고난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신앙의 정조를 지키다가 사자굴에 들어가기도 하고 풀무불 속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은 다 이런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과 지혜,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셨지만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물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고통스런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성도가 예수님 때문에 자발적으로 당하는 이 고난은 가장 값진 고난입니다. 그 고통의 현장에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것입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사람에 따라 다양한 고통의 강을 건너가면 인생을 항해합니다. 그 고난의 강이 어떤 이름으로 주어진 강이든지 그 고난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강이 징계의 강이면 우리는 폭풍을 잠재울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 강이 연단의 강이면 인내함으로 그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그 고통의 강이 주를 위한 강이라면 회피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며 건너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섬기는 언어/열린교회/981025 /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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