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되면 지역 감정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메스컴을 타고 원색적인 나체춤을 춥니다. 학계의 대부분은 지역 감정은 고려 왕건의 훈요 십조에서부터 기원되었다고 말합니다. 고려 건국에 애를 먹인 차령 이남 후백제 지역을 '배역지'로 규정, 이 지역 출신자에게 관직을 제한토록 한 규정입니다. 신복룡 교수같은 이는 그 기원을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지역감정이 빚은 편견의 예로 '삼국사기'를 들면서 신라 경순왕 손자 김부식이 근거없이 백제 땅을 폄하했다고 설명합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조선 중-후기엔 당쟁과 권력 싸움이 지역감정을 조장했고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각 지역인 특색을 말하면서 유독 전라도 사람을 폄하했다고 하며 안정복도 '팔도평'에서 호남을 노골적으로 격하했다고 합니다. 유독 호
남에서 잦았던 민란은 유교 지배체제에서 특정지역을 정책적, 이념적으로 소외 시켰고 16세기 왕조 전복을 꾀했던 정여립의 난은 지배층의 '호남 즉 역향' 논리에 이용되었으며 19세기 갑오동학 농민 혁명은 호남을 유교 국가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의 땅으로 인식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위정자들이 아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호남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현재처럼 확산되
어 있음을 증명해 주는 사료는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오히려 호남인에 대한 편견은 제3공화국 이래의 정치과정, 특히 선거과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생성,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1963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자기 지역 출신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성이라는 원초적 감정에 호소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박정희와 김대중이 경쟁한 1971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상대방 후보의 출신지역에 대한 원색적 비난을 선거전략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심화되면서 유권자들은 자기 지역 출
신후보를 스스로와 동일시하면서 상징적 대표성을 부여하게 되었고, 마침내 80년대 후반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지역주의적인 선거 결과가 극단적으로 표출되게 되었습니다. 일부 정치꾼들은 승리를 위해 특정 지역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하나로서 선거 과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유포시키고 그들이 동원한 지역감정이라는 최면술은 선량한 백성의 이성과 판단력을 마비시켜 지역 감정의 노예로 거수기 역할을 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선거와 같은 합리적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연고주의적 선택을 강요받았고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조차도 지역감정과 지역갈등을 애써 무시하고 스스로는 거기에서 해방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투표에서는 어김없이 지역감정의 포로가 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특히 신앙적인 양식이 있는 사람 마저 지역 감정의 포로가 되어 후보가 어떤 정치 역정을 걸어왔고, 지적 수준과 통찰력과 지도력, 행정적인 능력, 도덕적 청념도가 어떠한지를 비교하지 않고 어느 지역 출신인가를 투표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지역 감정의 덩어리의 노예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특정 지역 후보가 당선이 된다고 농민이나 노동자, 중소기업인, 평범한 시민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무엇이 있습니까? 일부 특권 지배 체제에만 유익이 있을 따름입니다. 특정지역 사람이 우월하고 특정 지역 사람이 열등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 마다 우리 나라 백성들은 지역을 초월하여 용감하게 일어났습니다. 이씨 봉건 왕조의 착취와 외세의 침탈에 맞서 가장 먼저 봉기하고 제일 용감하게 싸운 세력은 호남의 민중이었습니다. 이충무공은 "약무호남 시무국가-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이 나라도 없다 "고 말했습니다.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된 3.15 마산 의거와 박정희 유신독재의 붕괴를 부른 부마 항쟁의 주
역은 부산과 마산의 주민들이었습니다. 80년 5월 항쟁 때 현대사에서 가장 장엄하고 처절한 투쟁을 벌인 곳은 광주와 전남이었습니다. 6.25 전쟁 중에는 호남 사람보다 영남 사람이 더 많이 참전하여 산화하였습니다. 이렇게 영. 호남은 시대상황에 따라 정의와 진리의 길을 걸었습니다.
심리학자 Allport는 "어떤 사람에 대한 심리적 범주가 형성되면 그 범주의 속성들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그에 반대되는 증거는 거부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불'이라는 부정적 느낌을 실제로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지역 사람으로부터의 불신을 경험한 경우 그 지역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편견과 합치되어 이 편견이 유지,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편견은 편견을 가지게 된 사람 스스로 직접 그것을 경험하였다는 '경험적 믿음'으로 인하여 더욱 변화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변화하여야 합니다. 의식의 대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특정 정치인의 출세를 위한 지역 감정의 허위의식에 맹종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아끼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전한 감정입니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을 때 이왕이면 내 가족, 내지역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순순한 인간의 감정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감정이나 민족감정은 그 뿌리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이 타지역을 배타하는 감정으로 왜곡되어서도 아니되고 자기 지역의 우월감을 자랑하는 교만과 아집으로 표출되어서도 아니될 뿐 아니라 특히 객관적인 판단을 하여 공인을 뽑는데 이 지역감정이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정치 지도자를 뽑는 것은 나의 이익만 대변하는 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하여 적격자를 뽑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연고 투표로 정치적 후진국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좀더 성숙한 가치 판단으로 정치 지도자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980531 김 필 곤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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