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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226 추천수:0 112.168.96.71
2003-02-26 18:26:22
대구지하철 참사로 많은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당한 참사였습니다. 대학 합격을 하고 입학식 날을 기다리던 학생도 있었고, 졸업을 하고 직장에 취직되어 좋아하던 학생도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직장인, 애인을 만나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 지하철에서 작업을 하였던 사람들 각기 행선지와 하는 일은 달랐어도 그 시간 그 열차는 죽음의 열차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지난해 남편을 먼저 보내고 세 자녀와 함께 열심히 살아가는 주부도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열심히 살기 위해 식당일을 하며 영양사가 되기 위해 대구 시내의 요리학원을 다녔던 주부는 시어머니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어머니, 애들 좀 잘 보살펴 주세요. 저는 죽습니다" 어머니로서 마지막까지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온통 마음에 가득 찼을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모두 인생이라는 죽음의 열차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종착역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화재가 될지, 질병이 될지, 사고가 될지 알지 못하지만 어느 날 차는 멈추고 핸드폰으로 라마 유언을 남기고 갈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미국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졌을 때 죽음 앞에서 한 사람이 자기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전화를 했습니다. 교회 목사님이 받았답니다. “목사님 죽을 것 같아요. 우리 식구들에게 전해 주세요. 제가 정말 사랑했다고, 그리고 교우들에게 전해주세요 정말 사랑했다구요 감사하다구요. 그러나 저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떠난다고 꼭 전해주세요”그리고 전화는 끊겨졌다고 합니다. 사람이면 죽음은 한 번은 꼭 통과해야할 이 땅에서의 마지막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끝이라고 사는 사람도 있고 그 죽음이 새로운 세계를 향한 출발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죽음이 단절이고 파멸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죽음은 절망과 고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1883년 3월 14일 칼 마르크스가 사망하던 날, 그의 하녀가 다가와서 "저에게 당신의 마지막 말을 남기시면, 제가 기록해 두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마르크스는 "시끄러워, 나가 !" 라고 소리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나는 불행했다. 프랑스, 군대, 조세핀 ...." 이라며 초라하게 숨졌고 그렇게도 자유를 부르짖던 싸르트르도 죽음의 불안과 공포 때문에 병명도 묻지 않고 한달 동안 발악을 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때 어떤 독자가 신문사에 투고를 해서 "싸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싸르트르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소망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88세로 죽음에 임했을 때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으며 유명한 19세기의 미국 부흥사 D.L 무디는 임종을 당하여 슬퍼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내일 아침에 무디가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거든 정말 내가 죽은 줄로 생각지 마시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 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였든 파스칼은 팡세에서 "천국! 이것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도박이다! 그냥 우리가 포기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이것은 도박이다." 파스칼은 수학자이니까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천국이 없어도, 천국을 믿고 살았든 나에게 별로 손해볼 것은 사실은 없다. 그러나 천국이 정말 존재했다면, 준비만 했었으면 갈 수 있었든 천국, 그런데 그 천국을 내가 놓쳐버렸다면 이것은 큰일이다. 이것은 놓쳐버리기에는, 이것은 그대로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어마 어마한 도박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이 절망이나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환희의 세계를 향한 소망임을 말씀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이 시대 죽음에 관한 최대의 연구가는 하바드대의 정신의학자였던 엘리자베스 퀴버라스라는 학자라고 합니다. 그분의 팀들은 소위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연구했습니다. 죽었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들, 죽음의 상태를 체험한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모두다 긴 터널을 통과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부류의 사람은 아주 끔찍한 고통을 경험했고 한 부류의 사람은 환한 빛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빛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음 후에 천국이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부활이 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벌레가 고치가 되고 고치가 다시 나비로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죽음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에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 14:13)"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음도 복된 것이고 새로운 출발과 소망이 됩니다●

죽음 이후/ 김필곤 목사/ 20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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