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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선교를 다녀와서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1606 추천수:3 112.168.96.71
2004-06-20 15:09:12

단기 선교를 다녀와서

 

새벽 예배를 드린 후 월요일 새벽 5시 반에 공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준비를 했습니다. 미지의 땅을 여행할 때 갖는 기대와 설렘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 초등학교 다닐 때 “무찌르자 오랑케...”라는 노래를 부르고 자랐습니다. 6.25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하여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무수한 역사의 시간에서 그들은 우리 민족을 짓밟았습니다. 우리나라와 수교된지 이제 10여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이 변하였습니다. 그래도 자유롭게 왕래하는 나라가 되었고 한국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인 세계 인구 1/5이나 되는 그 땅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아직은 자유스럽지 못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중국과의 관계가 이만큼 대등하고 우월적 관계로 변화된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불과 50여년 만의 일입니다. 이제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는 민족으로 우리나라는 성장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문자와 사상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 땅에 한류 물결이 흐르고 그들이 조금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차에 짐을 실은 후 기도를 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청도 공항에 도착을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자 이미 중국에서 기업을 하시는 우리 교회 신이식 집사님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향했습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한족과 조선족 한 40여명을 훈련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보다 1천 2백년 전에 복음이 증거된 땅이지만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직전까지 중국엔 2만개소의 교회와 84만명에 이르는 세례교인들이 있었으며 5천 6백명의 선교사, 8천 5백명의 중국인 복음전도자, 3천 5백명의 전도부인들, 그리고 2천 1백의 중국인 목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종교를 아편으로 생각하는 공산당의 집권으로 기독교는 박해를 받았고 지금은 아주 자유롭지는 않지만 중국에는 삼자 교회와 가정 교회가 있습니다. 삼자 교회는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회로 ‘삼자’는 자전(自傳), 자양(自養), 자치(自治)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원래 20C초 일부 중국 교회지도자와 외국선교사가 중국교회의 토착화 및 자립을 목적으로 내세웠던 슬로건입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삼자애국운동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 후 1966년까지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이용물로 전락되었다고 합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의 문화대혁명 동안 모든 삼자교회 및 목회자조차도 정치적 비판대상이 되었고, 교회는 문은 닫았지만 1980년 삼자조직이 다시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 후 종교신앙의 자유 정책 하에 많은 예배당이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삼자의 정치적인 색깔을 인식하여 여전히 가정교회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개방된 삼자교회나 집회소에 출석하는 개신교 교인 수는 中 기독교회협의 발표에 의하면 약 1600만 5만여 개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중국 정부에 의해 정식으로 허락된 신학교는 13개이며, 약 700명 미만의 신학생이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기독교인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정 교회라고 합니다. 가정교회 교인은 약 6천만 내지 7천만이 되고 매일 2만 5천명 가량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가정교회 지도자를 기르는 곳에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가르쳤습니다. 중국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48시간 기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열정이 대단하였습니다. 그곳에 기숙하면서 새벽부터 저녁 9시까지 강하게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통역을 세우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성도님들과 함께 뜨겁게 기도를 했습니다. 수요일은 그들이 섬기는 가정교회 중 세 곳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따라 비가 내렸습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차를 대절하여 갔습니다.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갔습니다. 주택이 있는 곳에 들어가니 이미 성도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가정 교회였습니다. 한 곳을 넓게 터서 교회로 사용하고 다른 곳에 방을 만들어 사역자가 거주하였습니다. 밖에는 집과 같지만 안에 들어가니 십자가가 있고 강대상이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십자가를 걸 수 없고 예배가 자유롭지 않지만 신앙의 지도자인 한 집사님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다시 저녁 집회가 있는 가정교회로 출발하였습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같았습니다. 옛날 서울의 달동네처럼 공중 변소가 밖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들이 길게 지어져 있고 그것을 나누어 사람들이 거주하였습니다. 그 집 중에 제법 크게 집회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주일 날 4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예배당은 비가 새고 허름하였지만 사람들의 신앙의 열기만은 뜨거웠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서로를 위해 손을 붙들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짧은 기간 단기 선교를 마치고 고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기장이 기상사태가 나쁘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눈을 감고 묵상했습니다. 이대로 비행기가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200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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