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의 야만과 신앙인
어떤 사람에게 말과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면서 당나귀가 말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살기를 바란다면 제발 내 짐을 조금만이라도 덜어주게나!” 말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당나귀가 과로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말에게 모든 것을 지우더니 당나귀의 가죽까지 얹었습니다. 말이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아아, 참으로 비참하구나, 이게 대체 무슨 고생이람! 작은 짐도 지지 않으려다가 짐을 이렇게 몽땅 지게 되었으니. 게다가 가죽까지!” 이솝 우화에 나오는 <말과 당나귀>이야기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죽어야 끝이 납니다.
죽을 때까지 끝없이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는 인간사회는 결국 인간 욕망의 집적입니다. 모든 동물 중에 위장병이 있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시대를 “약육강식의 야만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은 글자 그대로 풀면 약한 자의 고기를 강한 자가 먹는다는 말입니다. 끔찍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한국 사회를 과장되게 표현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꽤 있을 것입니다. 타자의 불행을 자기 행복의 기초로 삼고, 이제는 없는 자가 아니라 가진 자들이 거리에 나와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생존경쟁 사회에서 약육강식(弱肉强食)이나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란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자나 고릴라는 우두머리가 바뀌면 전우두머리의 자식을 죽여버린다고 합니다. 동물계만 약속강식의 세계가 아니라 식물도 천이’라는 과정을 거쳐 우점종만이 숲의 지배자가 된다고 합니다. 소나무 숲 같은 경우는 뿌리에서 나오는 독한 물질로 인해 흔한 잡풀조차 자라지 못합니다. 세균이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계에서도 약육강식이 나타나 유산균이 차지한 발효식품에는 부패균이나 병원균이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육강식은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계에서도 비정하게 통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끼는 가장 약자이지만 강자의 보호를 받습니다. 엄격한 위계사회인 원숭이 사회에서 새끼는 우두머리의 머리를 밟고서 먹이를 맨 먼저 먹어도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코끼리, 기린, 코뿔소, 하마가 아프리카 평원의 강자이지만 이들은 상대적 약자인 사자와 표범 그리고 치타를 먹지 않습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먹는 까닭은 그들이 강자여서가 아니라 육식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육식동물도 탐욕을 위해 사냥하지 않고 상속을 위해 먹이를 동굴에 쌓아 놓지 않습니다. 다른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만 먹고, 배가 등에 붙을 때까지 참는다고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사회가 동물의 세계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하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만이 지배한다면 그 세상은 비정상적 사회이고 병든 사회입니다. 동물계는 도덕적 선악의 표준이 없이 생존이 본능이지만 인간사회는 자유와 평등, 박애라는 가치가 있는 곳이고 서로 상부상조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같이 사는 곳입니다. 경제계도, 학계도, 정치계도, 문화계도, 심지어는 종교계도 약육강식, 적자생존만 존재한다면 식물과 동물이 사는 초원보다 더 투쟁과 폭력과 무례와 탐욕만이 판을 치는 야만적 사회가 될 것입니다. 작은 웅덩이에서 물고기가 혼자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면 그 썩은 물로 머지않아 자신도 죽습니다. 탐욕의 끝은 죽음입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라고 했습니다.
이솝 우화 가운데에 파리와 불나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 파리가 날아다니다 맛이 있는 꿀을 발견했습니다. 꿀맛을 맛보다가 한복판에 뛰어 들어가 그 날개가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힘을 쓰면 쓸수록 그 꿀 속에 더 깊이 파묻혀 갔습니다. 그때 불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 “야! 이 녀석아, 음식을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네가 너무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결국 죽지 않니!” 그렇게 비난을 하는 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밤이 되어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불나비가 촛불 주변을 빙빙 돌며 가까이 가다가 결국은 타서 죽었습니다. 그때 아직도 죽지 않은 채 있던 파리가 “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더 바보구만. 한 번에 타 죽네.”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부자였다는 록펠러도 한 때는 탐욕의 사람이었답니다. 한 번은 신문기자가 인터뷰하면서 "당신은 참 부자인데 당신이 축적한 이 모든 재물로 당신은 만족하십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 때 록펠러는 “천만의 말씀입니다.”라고 했답니다. 기자가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라고 하자 록펠러는 "조금만 더"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살던 그가 병들어 죽음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인생을 살았답니다. 그는 백만평이 넘는 12개 대학을 건립했고, 4928개의 교회를 건축하였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잠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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