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감정의 치유
옛날, 중세 유럽에 한 왕이 있었답니다. 그 왕에게는 왕자와 공주 남매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이 죽어 상을 치르는데 그날따라 몹시도 천둥과 번개가 심했습니다. 왕자는 너무나 겁이나 동생의 방으로 들어가 슬픔에 잠긴 동생을 감싸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왕자는 그날 밤 동생을 범한 것입니다. 공주가 임신이 되어 점점 배가 불렀습니다. 왕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왕실의 위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공주는 이 아이를 몰래 낳아 갈대 상자에 담아 강에 떠내려 버렸습니다. 결국 부왕을 이어 왕자가 왕이 되었지만 죄책감으로 고민하다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오빠가 죽자 공주가 왕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공주의 자태는 아름다워졌고 벼슬 있는 영웅들이 공주에게 청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북방에서 외적이 쳐들어 왔습니다. 여왕은 전국에 방을 내렸습니다. "누구든지 외적을 토벌하는 자는 여왕의 부군으로 삼겠노라"라는 방이었습니다. 그 때 어촌에 사는 한 준수한 청년이 자원하여 외적을 섬멸하러 떠났습니다. 그는 외적을 섬멸하고 여왕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왕자와 공주를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에게는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풀지 못한 한이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누가 그의 부모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궁궐의 사록을 읽다가 자신을 부양해 준 어부로부터 들었던 갈대 상자 이야기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이 실마리가 되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왕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여왕은 자신의 아내이며, 동시에 어머니, 고모가 되었습니다. 그는 처절한 운명 앞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교황이 소천하여 후임 교황을 피택하는데 어떤 추기경에게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무인도 동굴에서 수도하는 피골이 상접한 늙은이에게 제관하라"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사코 반대하였지만 결국 그는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희랍의 오이디푸스 왕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우연히 이웃나라 왕과 좁은 길에서 서로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먼저가겠다고 비키라고 합니다. 양보하지 않습니다. 결국 싸움을 하게 되고 젊고 검술이 뛰어난 오이디푸스 왕이 이웃 왕을 칼로 쳐 죽입니다. 그리고 내친김에 그 죽은 왕의 나라까지 침공하여 항복을 받게 되고 그 나라의 왕비를 취하여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왕비는 자기의 생모이고 자기가 죽인 왕은 자기의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됩니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날 때 점괘가 잘 못나와 그를 숲에 버렸는데 그가 죽지 않고 다른 나라 왕이 되어 결국 아버지를 살인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오이디푸스는 후회해도 소용없고, 뉘우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제 운명을 저주하며 스스로 눈알을 뽑아 내던지고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해되지 않는 비극적인 일들이 사실로 존재합니다. 친딸을 24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하여 7명의 자녀까지 낳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당한 사람은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꼭 나이테와 같습니다. 가물었을 때의 흔적, 영양이 충분했을 때의 흔적, 폭풍우가 많았을 때의 흔적을 나이테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진 권위자, 친구들, 애인, 남편, 아내, 자녀로 인한 상처가 흔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가 깊으면 인생은 과거의 상처에 포로가 되어 버립니다. 대인관계의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결여됩니다. 삶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태도를 갖습니다. 내면의 평강을 빼앗기고 관계의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결핍, 분노, 두려움, 열등감, 죄책감, 우울증과 강박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해 버립니다. 무기력, 신경쇠약,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상실합니다. 자기의 약점이나 열등감을 드러내지 않고 위장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 경향이 나타납니다. 상처받은 자아나 열등감을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여 보충하려 합니다.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합니다. 자기의 아픔을 해소시키기 위해 그 원인을 남에게 뒤집어씌웁니다. 현실을 도피하여 모든 것을 잊음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도피 기제로 나타납니다. 현실에서 피하려고 하고, 어린 시절로 후퇴하며, 부끄러운 일을 잊으려고 행동합니다. 자신에게 상처준 대상에게 복수를 시도하는 공격기제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흘러간 물로 풍차를 돌릴 수는 없습니다.
상한 감정을 예수님께 내어 놓으면 상처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어떤 상한 감정이 있더라도 예수님께 나가면 다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과거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고 상한 감정이 오히려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 죄의식, 수치심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치유된 손상된 감정은 오히려 자신을 겸허하게 하는 향기가 됩니다.
김필곤 목사/섬기는 언어/2009.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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