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요일 단상
목요일,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자명종이 울렸다. 수십 년 다닌 새벽기도회지만 기대를 가지고 상쾌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직도 서툴다. 교회로 가는 길에 새벽기도회를 가시는 권사님을 모시고 교회에 도착하니 문을 지키는 “세콤”이 주인인지 알 수 있는 인식신호를 달라 한다. 키를 대니 제가 원하는 비밀번호라고 문을 열어준다. ‘새벽기도회에 많은 사람이 나와 3층 예배실에서 새벽기도회를 드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예배실에 들어가 방송엠프를 켠다. 2층 목양실에 들어가 어제 새벽 설교를 위해 묵상한 시편 123편을 다시 폈다. 요즈음 시편 한 장씩을 묵상하며 새벽기도를 드린다. 오늘 말씀은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를 받았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라는 주제였다. 그 때 시편 기자는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여호와께서 은혜 베풀어 주시길 기다렸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거듭 기도했다. ‘그래 멸시와 조소를 당할 때 사람보지 말고 여호와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은혜 베풀어 주실 때까지 기다리며,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거듭거듭 은혜받을 때까지 기도하자.’라고 다짐했다.
5시가 되어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간단하게 설교하고 5시 15분부터 기도를 드렸다. 남북의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 교회와 소외된 어려운 이웃, 만만만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 제목을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다. 교인들을 예수님처럼 몸을 내어 주면서 돕지는 못하지만 기도로 매일 매일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는 것은 목사의 특권이고 행복이다. 환자를 직접 집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기도할 수 있고, 기업하는 성도들을 위해 자금을 대줄 수 없지만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간청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직접 도울 능력은 없지만 사랑하는 교인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매일 할 수 있어 좋다. 아무 기도 제목이 없는 가정도 생각해보면 다 기도 제목이 있다. 기도하다보면 어떤 성도의 가정은 어느 날 기도제목이 응답되어 홀로 감사를 드린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행복이다.
목회를 결심할 때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해야겠다.’라고 결심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가면 갈수록 깨닫는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직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서툴지만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 사랑했던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침밥을 먹고 교회에 나와 새신자 공부를 시켰다. 말씀을 사모하는 30대 성도님, 성경을 알기 위해 애쓰시는 70을 훌쩍 넘으신 성도님 부부의 모습을 보면 더욱 잘 가르쳐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성경 공부가 끝나고 목양실에 와 보니 아는 목사님의 전화가 와 있었다. 전화를 해 보니 화단에 좋은 나무가 있는데 교회에 가져다 심으라고 했다. 자신의 교회 집사님들이 1시에 오니 그 시간에 맞추어 오라는 것이다. 11시 30분에 새가족 심방이 있어 빨리 심방하고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젊으신 집사님이 새가족 심방을 받으며 점심을 진수성찬으로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식사를 집에서 대접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익숙한 집사님 부부로 보였다. 식사가 끝날 무렵 전화가 왔다. 교회 창문에서 비가 새는 하자가 생겼었는데 그것을 보수하기 위해 교회에 와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다 나와 교회에 아무도 없었다. 급히 교회에 와 보니 이미 공사를 하고 있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빨리 와서 나무를 가져가라는 전화였다.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아 집사님들이 다 가셨다고 했다. 장로님 트럭을 빌려 목사님 두 분과 함께 나무를 실으러 갔다. 막상 가보니 나무를 캐는 일까지 우리가 해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60대를 바라보는 목사님, 허리가 아프신 목사님이 열심히 하였다. 목사 셋은 익숙한 일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여 향나무와 주목나무 등을 캐어 교회에 왔다. 6시 20분에 을지 대학교 기독교 학생들의 종강예배 설교가 있어 같이 나무를 심지 못하고 목사님 두 분에게 부탁을 하고 서둘러 학교에 갔다. 9시 30분이 되어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왔다. 밥을 먹고 잠을 청하는데 아내가 서운한 말을 했다. “왜 당신답지 않게 목사님들에게 나무 캐는 부담스러운 일을 시켜요?” 아무 말 없이 자려다 계속 말하자 불쾌한 감정을 말로 뱉었다. “아니, 누가 일하기 좋은 사람이 있어, 우리가 고생하여 나무 심어 놓으면 얼마나 교인들이 좋아. 봉사할 일꾼 없으면 나라도 해야지. 내가 누구 시키기만 하는 사람이야. 사람 없으면 화장실 청소도 하지 않아. 목회자가 꼭 말씀과 기도만 해야 해. 나도 돈 들여 일꾼 시키면 편해. 그거 다 교인 헌금이야.” 정제되지 않은 말을 쏟아놓고 후회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고 다짐했지만 부족하여 좋게 시작한 하루가 나쁜 감정으로 끝이 났다. 호흡 있는 동안 하루하루가 좋게 시작하고 좋게 끝났으면 좋겠다.
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20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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