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판자촌 산동네에 경사가 났다. 가락시장에서 지게꾼으로 살아가는 집 아들이 서울대학에 합격했다. 김 씨의 얼굴엔 모처럼 웃음이 걸렸다. 아내가 떠난 후 처음 걸린 웃음같았다. 그는 파출부로 일하는 아내를 등쳐먹고 살았던 인간이다. 그가 변한 것은 아내의 죽음 이후다. 술만 먹으면 아내의 머리채를 흔들었다.
“야 이년아, 내가 너 같은 것만 만나지 않았으면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너 만나 신세 조졌어... 나가, 꺼져버리라고.”
그럴 때면 아들을 데리고 판자촌 교회로 피난 왔다.
“또 술을 드셨구먼요.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열두 달... 차라리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편하게 사세요.”
그녀에게 이혼을 권유했다. 구타뿐 아니라 의처증이 심했다.
“목사님, 어떻게 이혼해요. 첫 번째 실패했는데 또다시 그렇고 싶지 않아요. 그냥 애민이 하나 보고 살래요.”
그의 아내는 첫 번 결혼에 실패했다. 그래서 노동판에 나갔는데 김 씨가 겁탈했다고 한다. 김 씨는 늘 주장하기를 그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한다.
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은 아내이다. 뭐 하나 마음 드는 구석이 없는데 그 후 아이가 생겨 결혼해서 자신의 인생이 비참해졌다고 김 씨는 늘 술만 먹으면 씨부렁거린다. 술을 먹지 않으면 새색시같이 얌전했다. 결국 김 씨 아내는 자살하고 말았다.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청산가리를 마셨다. 가끔 교회에 나와 기도하던 그녀의 자리엔 그녀가 보던 성경책만 남아 있었다. 성경책 안엔 그녀의 유서가 들어 있었다. 언젠가 죽을 것을 생각하고 유서를 남긴 것이다. 남편과 목사에게 남긴 유서였다.
“목사님, 애민이 아빠 불쌍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오른 쪽 눈을 잃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남편이 사람될 수 있도록 꼭 예수님을 전해 주시고 우리 애민이 잘 돌보아 주세요...”
“여보, 미안해요. 내가 더 당신 마음을 안아주지 못해서요. 나 때문에 당신 인생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 떠나면 그래도 당신 남은 인생은 좋아질 거예요. 내가 당신 인생의 걸림돌이 되어 미안했어요. 하지만 애민이 진짜 당신 아들이어요. 이것만은 믿어 주세요. 애민이 잘 길러 주세요...”
김 씨는 애민이가 전 남편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술만 먹으면 그 이유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의 아내는 죽음으로 애민이 아빠가 김씨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내의 죽음 이후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교회에 나왔다. 술을 끊고 가락시장에서 지게꾼 일을 하였다. 애민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 주었다. 그 애민이가 서울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술에 취해 매일 그 아들에게 욕을 퍼부었던 입에 웃음이 가득 걸렸다. 그런데 또 다시 김 씨는 아내가 죽기 전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저 미친 놈, 어려서 엄마 잃고 혼자 고생고생해서 키워놨더니 돈도 안 되는 미술사인지 뭔지를 공부하다 끝내 몹쓸 암에 걸려 죽게 됐으니…."
아버지는 아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공부하고 그림 그리면서 편하게 살지. 분수도 모르고 무슨 역산지, 석산지 한다고 죽을병에 걸려서…. 너는 평생의 원수다."
아들은 돌아누워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내용만 달라졌지 아내의 숨통을 죄었던 그 말투 그대였다. 예배를 드리자고 하자 거절했다.
“예배는 무슨 놈의 예배, 교회 나가서 되는 일 뭐가 있소. 지 애미 자살했지, 저 놈 지랄 같은 병 걸렸지... 한 번 보아 주려면 화끈하게 보아주던지... 끝이 이게 뭐요. 예수 믿으면 끝이 좋다면서...”
“그래도 애민 아버지, 같이 예배드려요. 애민이를 위해서 희망을 가져요. 의사는 끝났다고 해도 생명은 하나님께 있어요. 오늘날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기적은 일어나요.”
“당신들이나 그 잘난 하나님께 예배드려요. 난 못 배워서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할 수도 없고 저애 저렇게 되었는데 필요 없어요. 내 입에서 더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나 잡지 말아요.”
그는 나가버렸다.
예배를 드린 후 애민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제발 하루라도 아버지의 저 소리를 좀 안 듣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벤허'를 보고 싶습니다."
입김이 쩍쩍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12월 말 아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하자 김씨가 코웃음을 쳤다. "이런, 미친 것들! 죽어가는 애한테 영화는 무슨 영화!" 극장에 도착해 보니 좌석은 모두 매진이었다. 그냥 돌아갈 수 없어 굳이 좌석이 필요 없으니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 영화를 보는 게 환자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매니저는 앞장서서 사람들을 밀치면서 휠체어를 극장의 가장 중앙으로 데려다 줬다. 영화를 보고 나온 애민이는 무척 행복해했다. 그날 밤 아들은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
아버지가 들은 척도 안하자,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미안해요. 제가 아들 노릇을 못해서…."
아버지가 다가와 아들을 와락 안고 통곡하였다.
“아들아!...”
열린교회/김필곤목사/콩트집 하늘바구니/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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