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인생과 말
정소현 작가의 단편소설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에 품위 있는 노후를 보내고자 보험에 가입한 여성 전문병원 대표가 나옵니다. 회사원 급여 정도의 납입금을 20년간 매월 낸 주인공은 만 70세가 되면서 각종 좋은 보험 혜택을 받았습니다. 매일 요리사가 방문해 맛과 영양을 갖춘 두 끼 식사를 준비해주었고, 여러 모임과 파티에 초대받아 유명인의 강의를 듣고 교양인들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청소 서비스, 매일 방문하는 목욕관리사, 최고급 전동휠체어 등 각종 보험 혜택을 누렸습니다. 보험 특약에 따라 직원을 보내 자녀역할 서비스를 해 주었는데 주인공은 그것을 모르고 어느 날 잠적했던 아들을 발견하고 그 뒤를 쫓다 다리를 다칩니다. 손자로 착각하고 있는 보험사 직원은 보험 내용을 잘 알기 때문에 보험해약을 권유하지만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그를 오해합니다. 그녀가 들은 보험의 특약은 치매가 확인되는 순간 안락사를 시키는 보험이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알츠하이머 질병을 앓다 배수로에 빠져 회복 불능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나윤승인데 아버지가 윤리적으로 살면 결국 승리한다고 지어준 이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안락사를 했고, 어머니와 자신은 치매 아버지의 죽음으로 지옥같은 삶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음독자살을 하고 맙니다. 윤승은 동료 의사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떼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 후 남편은 오지로 의료 봉사를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홀로 남게 된 주인공은 그로 인해 국내 유일의 치매 안락사 보험인 품위 있는 삶 보험의 특약에 가입했습니다. 치매 판정이 내려지면 계약을 파기할 수 없는 조건의 보험입니다. 약정대로 집행하려는 아들로 착각하고 있는 직원과 약관대로 안락사를 집행해야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손자로 착각하고 있는 직원이 그녀 앞에서 다툽니다, 그 때 주인공은 "그러니까, 제발 나 좀 살려줘. 이쁜 내 새끼들아."라고 작품은 끝이 납니다. 품위 있는 삶을 위해 보험을 들었지만 결말은 결코 품위 없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어려움이 닥쳐와 무너질 때 가장 내려놓기 쉬운 게 품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품위 있는 삶을 살다 품위 있는 죽음을 하기를 원하지만 품위 있는 삶이 꼭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품위를 곁에 두고 살고 싶지만 말과 행동은 쉽게 품위의 자리를 벗어나 버립니다. 품위의 사전적 정의인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입니다. 품위(品位)라는 말은 한자어로 ‘입’을 뜻하는 ‘구(口)’자가 세 개로 된 ‘품(品)’과 사람이 서 있는 ‘위(位)’자로 되어 있습니다. 즉, 품위는 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품위는 삶의 양식이나 행동에도 나타나지만 품위는 말의 품격으로 드러납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아무리 화려한 삶을 산다고 해도 말의 품격이 없으면 품위 있는 삶을 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플라톤은 <국가(Politeia)>라는 책에서 ‘정치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올바름을 아는 인격은 품위를 지키는 인격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좀처럼 유혹당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품위를 지키며, 모든 경우에 자신을 단정하고 조화롭게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나 국가를 위해서 가장 유용한 사람일 걸세.”라고 말합니다. 톨스토이가 “인생의 목적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듯이 정치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죽음 후의 또 다른 삶이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은 품위 있는 삶이 많이 차이가 납니다.
영원한 천국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 마지막 말이 다릅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사는 사람은 비록 이 땅에서 호화롭고 안락한 삶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품위 있게 행동하고 말하며 살다 마지막 품위 있는 말을 남깁니다. 들어갈 무덤도 없이 사셨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조롱하고 모독하는 자들을 보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향하여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구원사역을 다 이루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품위 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품위있는 사람은 품위 있는 말을 마지막까지 하다 갑니다. 품위 있는 사람은 타인의 약점이나 결점을 감싸주는 말, 천박하지 않는 예의 있는 말, 사리사욕의 노예가 되지 않은 말, 의리를 지키는 말, 인정있는 말, 수치심을 잠재우는 말, 등을 합니다. 품위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극한적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14:40)”, “마음의 순결을 사랑하고 말을 품위 있게 하는 사람에게는 왕이 그의 친구가 된다(잠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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