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신앙인의 자세
보이지 않는 코로나 19가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 브린 바너드 저>에 의하면 세계사를 바꾼 것은 전쟁이나 기근보다 병균이라고 합니다. 전염병은 “더 많이, 더 빨리”에 비례하여 길고 널리 퍼질 것입니다. 수렵채집 시기에는 한 사람이 먹고살려면 100만㎡의 땅이 필요했지만, 물을 중심으로 모여 농업을 선택하면서 한 사람이 먹고 사는 면적은 500㎡로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면적당 2000배나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 그만큼 세균성 질병과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더 노출되었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되었지만 더 많이 모이는 도시화와 더 빨리 왕래하는 교류로 인류는 전염병에 더 취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전염병은 시대마다 역사를 바꾸어가고 있는데 신앙공동체였던 중세 사람들의 대처방법을 교훈 삼아 오늘날 바람직한 신앙인의 전염병에 대한 대처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의학적 지식으로 대처하되 의학적 무지나 과학적 맹신으로 대처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세는 페스트에 대한 의학적 무지와 과학적 맹신으로 무너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가 쥐나 다람쥐 같은 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이 옮기는 병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흑사병이 지상의 나쁜 공기(미아즈마 Miasma)로 감염된다고 판단해 하수구로 다니거나 하수구에서 살았지만 오히려 흑사병의 빠른 확산에 크게 일조했답니다. 지금은 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지만 1880년까지 콜레라, 클라미디아, 흑사병 등 질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에 있다고 정설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시에도 방호복을 입음으로 최대한 접촉을 피했고 지팡이를 사용하여 환자와 직접대면을 최소화했으며 새부리 같은 마스크에 각종 향료와 허브를 넣어 소독 효과를 가지게 했습니다. 일반인도 향기 나는 꽃을 휴대했고, 꽃을 구할 수 없다면 허브잎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답니다. 어떤 의사는 혈액의 오염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여 환자의 정맥을 잘라 사혈시켰는데 오히려 과다출혈과 빈혈로 사망했고 거머리를 사용해 다른 세균 감염을 불러왔답니다. 상당히 인기 있는 치료법은 소변요법이었는데 비감염자의 오줌은 비싸게 거래되었고, 대변을 나무 수액이나 약초에 섞어 몸에 바르거나 감염부위에 발라 오히려 사망속도를 높였답니다. 의료기술의 발달은 일반은총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 과학적 무지는 맹신으로 이어져 과학숭배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발달된 백신과 치료제를 사용할 뿐 아니라 전염병 예방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의학적 지식을 충분히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처럼 현대의학도 한계가 있으므로 의학적 무지를 탈피하되 과학적 지식을 절대화하며 맹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윤리적으로 탐욕의 노예에서 벗어나 선행으로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야합니다. 중세 당시 페스트로 인하여 고열과 고름에 시달리다가 정신을 잃고, 결국 발병 5일 이내에 피를 토하며 사망할 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고 부모는 아이를 버리고 남편은 아내를 버렸답니다. 교활한 의사들은 조각낸 에메랄드의 분말을 음식에 넣어 먹게 했는데 유리 조각을 에메랄드라고 속여 부를 이루었답니다. 권력자와 기득권자들은 비난의 과녁을 유대인에게 돌려 유럽 각국 도시의 우물들에 유대인들이 독을 탔다는 소문을 퍼뜨려 백성의 시선을 유대인에게 돌리고 유대인을 학살함으로 유대인에게 진 빚을 탕감받았답니다. 일부 사람들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며 도덕적 끈을 놓고 음탕함과 환락의 길을 선택했답니다. 지금도 형태만 다르지 이런 현상을 재연되고 있습니다. 부패한 중세를 청산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루터는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대학 동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든 사람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신앙인들은 자신만 살겠다고 아우성 칠 것이 아니라 지체의식을 가지고 편견과 혐오가 아닌 긍휼과 사랑으로 연대하여 공동체를 살려야 합니다.
셋째, 전염병이 신앙의 퇴보가 아니라 신앙적 성숙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전염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말세의 징조, 하나님의 주권의 선포와 경고, 타락한 세상의 필연적 불행, 생존과 생식을 위한 생물의 투쟁의 결과, 인간의 탐욕과 부주의 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세 당시 무지한 성직자들은 전염병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외치며 예배당에 모여 회개하게 함으로 오히려 더 전염병을 확산시켰답니다.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고 거리로 나와 자신을 매질하여 오염으로 죽어갔답니다.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믿었던 기복주의 신앙인은 전염병 앞에 하나님은 무용지물 이라고 신앙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참된 신앙인은 탐욕을 버리고, 전염병이라는 한계 앞에 겸손하게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대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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