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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는 삶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491 추천수:3 220.120.123.244
2019-11-24 13:51:59

자족하는 삶

톨스토이 작품 중에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바흠입니다. 농사만 열심히 짓는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땅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목민인 바슈키르 사람들이 땅을 싼값에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하인과 함께 천 루블을 가지고 7일 동안 걸어 바슈키르에 도착했습니다. 족장은 천 루블에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면, 그 땅을 다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루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천 루블로 잃고 땅도 갖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그는 족장이 벗어놓은 모자에서부터 출발하여 지나가는 자리마다 구멍을 파 자기 소유임을 표시했습니다. 가면 갈수록 갖고 싶은 땅은 많아졌습니다. 문득 너무 멀리까지 왔다는 생각으로 해가 지기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죽을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해가 노을에 묻힐 무렵 땅바닥에 놓인 모자와 자신의 천 루블이 보였습니다. 땅바닥에 앉아 배를 잡고 있는 족장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겐 아직 해가 진 것처럼 보이지 않을 거라고 위로하며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다해 족장의 모자를 잡았습니다. 하인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을 때는 이미 피를 흘리며 죽어갔고 바슈키를 사람들은 모두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바흠의 하인은 괭이를 들고 주인을 위해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 구덩이는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단 2m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곳에 묻혔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대우받고 행복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합니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쓴 아잔 브라흐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삶, 고통, 사랑, 두려움, 행복, 분노, 용서…….” 등 마음속에 존재하는 108마리의 코끼리를 따르지 말고 그 코끼리의 주인이 되라고 말합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멕시코의 조용한 어촌 마을에 휴가를 온 미국 경영대학 유명 교수가 아침나절 배에서 고기잡이 장비를 거두고 있는 현지인 어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어부에게 "안녕하시오. 아미고!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고기잡이를 끝내는 거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세뇨르, 다름 아니라 우리 식구가 먹을 만큼 충분히 고기를 잡았고 또 시장에 내다 팔 여분의 양도 되기 때문에 일찍 끝내는 겁니다. 이제 집으로 가서 아내와 점심을 좀 먹고, 오후에는 잠깐 낮잠을 잔 뒤, 아이들과 놀 겁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바에서 데킬라 한 잔 마시며 친구들과 기타 연주를 할 거예요. 나한테는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세뇨르."라고 어부는 말합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조언을 합니다. 오후 늦게까지 바다에 나가 있으면 두 배나 많은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고 어선을 구입하여 6, 7년 안에 큰 어선 회사를 가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본사를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주식 환매를 통해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부가 물었습니다. "하지만, 세뇨르 교수님. 그 많은 억만금을 갖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교수는 말했습니다. "아미고, 그 모든 현금을 가지면 당신은 언제든지 은퇴를 할 수 있소. 그렇소! 퇴직해서 아무 걱정없이 삶을 즐기는 거요. 이곳과 같은 그림 같은 어촌 마을에 작은 별장을 한 채 사고, 아침이면 고기를 낚을 수 있는 작은 배를 한 척 사는 거요. 날마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그 다음에는 아무 걱정 없이 낮잠을 즐기는 거요. 오후에는 당신의 아이들과 충실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바에 가서 데킬라를 마시며 친구들과 기타연주를 할 수도 있소. 그렇소. 그 정도의 돈만 있으면. 아미고. 당신은 퇴직을 해서 편하게 살 수 있소." 그러자 멕시코인 어부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세뇨르 교수님.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한 재산가가 질문했답니다. "이 세상 최고 부자가 누구입니까?" 내심 자신을 지목하리라고 기대하는 부자에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이 세상 최고의 부자는 가장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적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큰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지금 삶에 자족한 사람이 미래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족함이란 체념에 가까운 노자의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가난을 신성시하는 성빈주의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토아 철학들처럼 의지력으로 환경에 저항하며 스스로 내면의 만족을 구축하는 것도 아닙니다. 왕인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라고 고백했듯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말합니다. 평생 하나님을 통해 자족한 삶을 산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궁핍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압니다. 나는 배부르든 배고프든, 풍족하든 궁핍하든, 모든 형편에 처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빌4:11~12)”라고 고백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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