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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숨쉬는 세상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156 추천수:14 112.168.96.71
2013-07-28 10:03:42

정의가 숨쉬는 세상

 

이런 퀴즈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바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강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불을 끄기 위해 소방관이 출동하였습니다. 불이 난 집은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바람이 세게 불기 때문에 가만히 놓아두면 옆집에 옮겨 붙을 상황입니다. 어느 집부터 먼저 불을 꺼야 할까요? 답은 돈을 준 집부터 물을 뿌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옳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한국 리듬체조의 간판으로 활약한 신수지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신수지는 공정치 못한 심판을 보면서 "더러운 ×들아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이렇게 더럽게 굴어서 리듬체조가 발전을 못하는 거다"라는 내용의 격한 글을 올렸습니다. 각종 대회들이 공정치 못하고 뒷거래로 상도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조차도 "세상이 불공평해!"라고 말합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와 각종 탈법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불공정, 장애인 같은 힘없는 소수자에 대한 멸시와 핍박 등 공정 사회로 가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의론의 대가인 미국의 존 롤스는 "진리가 사상 체계의 첫째 미덕인 것처럼, 사회제도에선 정의가 제일의 미덕"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의가 숨 쉬는 사회가 좋은 세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정의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보편적 정의와 특수적 정의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보편적 정의'는 규범에 따르는 합법성을 의미하며 '특수적 정의'는 사회생활의 구체적 규범을 설정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공정성 혹은 균등성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특수적 정의는 분배적 정의와 시정적 정의로 다시 세분하여 '분배적 정의'는 재화, 명예, 공직 등에 대한 분배의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시정적 정의'는 물품교환, 대여, 고용 등 개인간 거래의 불공정을 시정하는 교환적 정의와 범죄의 처벌과 범죄에서 유발된 상해를 보상하는 처벌적 정의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현대사회의 정의관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행복의 극대화, 자유존중, 미덕 증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가장 많은 구성원에게 최상의 이익을 주는 조치가 가장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각자 선택한 삶을 살아갈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정의로운 일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도덕과 미덕을 좇아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할 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된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하여 크게 네 가지 모델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에덴동산입니다. 둘째가 가나안 땅입니다. 세 번째 정의로운 사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있은 후 오순절 성령이 임함으로 이루어진 오순절 성령 공동체 교회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주어진 정의로운 세상은 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 재림으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 땅에서의 정의로운 세상은 인간의 탐욕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완전히 정의로운 사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접어서는 안됩니다. 정의로운 사회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먼저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일찍이 흄은 정의 문제가 대두되는 것은 자연적 자원의 부족과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변해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의로운 사람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교육을 시키면 정의로운 사람이 될까요?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하버드 대학 샌델 교수는 교육을 많이 받으면 더 정의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교육 수준이 높다고 더 정의롭게 산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 합니다. 교육보다 인간의 품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품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어떻게 변화됩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완전한 정의가 실현되는 천국을 실제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니까 정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분배 정의를 실현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분명한 가치관과 꿈을 가지게 됩니다. 억울한 사람, 소외된 사람, 불의한 제도로 압박받는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관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시러 오신 예수님처럼 실제적으로 현장에서 정의로운 윤리적 결단을 합니다. 성경에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렘 33:15)”라 예언된 것처럼 예수님은 말의 성찬의 정의가 아니라 실천적인 정의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4)”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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