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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6521 추천수:14 112.168.96.71
2014-05-25 16:55:47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


 

사람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됩니다. 그 중 눈을 통해 가장 많은 정보를 얻게 됩니다. 눈이 없으면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생후 19개월 무렵 병으로 '헬렌 켈러(Helen Keller)'는 시각과 청각을 잃었습니다. 그녀는 만약 내가 대학 총장이 된다면 필수과목으로 '당신의 눈을 잘 쓰는 법(How to use your eyes)'을 개설하겠다고 하였답니다. 그 이유는 눈을 잘 쓰는 방법을 알게 되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쉽게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봄으로써 세상을 더욱 놀랍고 새로운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답니다. 어느 날 헬렌 켈러는 한참 동안 숲속을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무엇을 관찰하고 왔는지 물었답니다. 그러자 친구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어."라고 말했답니다. 그 때 헬렌 켈러는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눈이 있어 똑같은 것을 보아도 깨달은 사람이 있고 그냥 스쳐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떨어져 상처난 사과를 보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마당에 있는 작은 땅을 바라보며 채소를 심어 먹을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 땅에 꽃을 심어 매일 출석을 부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가을 감을 보고 폭풍과 이슬과 화려하지 않는 감꽃을 보는 사람이 있고, 까마귀 밥이 되기 전에 따기 위해 장대를 가지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늦은 가을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볼 때 시인은 눈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 봅니다. 그래서 여름철 다가온 폭풍도, 가을에 내리는 이슬도, 아무의 시선도 받지 못했던 감꽃을 보며 시를 씁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를 보면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라는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시인은 대추를 보면서 실제 대추 속에 있지도 않는 태풍과 천둥과 벼락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인이 자신과 대추를 하나로 일체화시켜 대추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보는 것입니다.

시인은 사물을 볼 때 풀이 되어 보고, 강이 되어 보고, 나무가 되어 봄으로 사물을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을지라도 마음의 눈이 없으면 별을 보며 “별 헤는 밤”을 읊조릴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적인 눈 ‘육안’이 있고 눈이 없어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심안’이 있습니다. 사물을 마음으로 보려면 자세히 관찰하고 오래 사색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사색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집중하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고 듣지 못한 것도 듣게 됩니다. 나무가 말하고, 돌이 소리 지르며, 자연이 고통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며 깊이 성찰하면 그것들을 만든 창조주의 음성을 듣게 되고 창조주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되면 자연계를 넘어서는 영적 세계가 믿음의 눈으로 열리게 됩니다. 이 때 육안과 심안을 뛰어 넘어 또 다른 눈이 열리는데 그것이 영적인 눈 ‘영안’입니다. 육안은 물질을 보는 눈입니다. 심안은 마음을 보는 눈입니다. 영안은 영적 세계, 신령한 세계를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열립니다.

육안이 모태에서 출생함으로 열리듯 영안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열리는데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중생’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라고 말씀합니다. 죽은 생명이 무게를 느낄 수 없듯 영적으로 죽어 있을 때는 영적 세계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영적 생명을 가질 때 영적 세계에 대하여 오감이 생깁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머리가 둔치이면 들에 핀 꽃을 보고 아름다운 탄성을 지르지 못하듯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실력이 있어도 영안이 열리지 않으며 영적 세계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머리 좋은 흄이나, 칸트, 해밀턴, 콩트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영적 세계는 거듭나 믿음이 생겨야 믿음으로 볼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고린도 전서 1장 21절에서는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섬기는 언어/열린교회(흥덕)/김필곤목사/201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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