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과 우리 의식
이미 IMF체제 이후 지난해 말부터 밀려오는 실업 파고는 지칠 줄 모르고 우리네 땅을 휩쓸고 있습니다. 3월 중순 현재 전국의 실업자수가 165만 명에 육박하고 실업률도 8%선(경제활동인구 2천 64만 5천명 기준)에 근접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파고는 쉽게 내려앉은 것 같지 않습니다. 이기호 노동부장관도 19일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앞으로 1백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상존하는 [고실업 시대]가 3∼4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외국 기관들은 우리 나라의 실업 사태가 더 비관적으로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JP모건사 등 일부 외국기관에서 실업자가 2백만 명에 이를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는 {실
업률 10%, 실업자 2백만 명 이상}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경총 자료에 따르면 국내기업들 상당수가 {사내
잉여 인력이 30% 안팎}이라는 자체 진단을 내놓았으며,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인정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1만 명씩 발생하는 실업대란은 정리해고가 본격화되는 4월부터 가속될 것이고 대기업들도 구조조정이란 미명으로 대량감원에 착수함으로써 무차별적 실업공포는 끝이 안보일 것입니다. 실업은 단지 통계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먼저는 신분의 변화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실직은 자신과 가족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져 있게 마련입니다.
신분의 변화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이어집니다. 실업의 충격과 좌절 속에서 한없이 마음은 움츠러들게 됩니다. 아쉬움. 허전함. 고독감으로 뒤섞인 정신적 위축은 자신감을 잃게 하고 부정적 사고를 낳으며 사회와 환경을 저주케 합니다. 심하면 투신 자살을 하고, 일가족 집단 자살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실직은 어느 날 갑자기 정신적 불구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 정신적 불구는 곧 육체적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의 마음과 감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한 '책임자 원숭이' 라는 실험이 있습니다. 두 마리의 원숭이를 묶어 놓고 그 중 한 마리를 '책임자' 로 지정한 다음 불빛 등의 자극이 있을 때마다 손잡이를 누르도록 훈련시키는 실험이었습니다.
만약 자극이 있는데도 손잡이를 누르지 않을 때는 두 마리 모두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데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전기충격을 당한 원숭이는 잠깐 놀라기만 할 뿐 건강하게 살아남지만 자극에 대비해 늘 긴장해야 하는 책임자 원숭이는 열흘쯤 뒤에는 심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으로 인한 복막염으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실업자에게 다가오는 극심한 심리적 부담감은 책임자 원숭이와 같은 것일 것입니다.
실업이 장기화되면 그것은 자신과 가족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회와 타인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
게 합니다. 실업자가 격는 부담감은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일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였는데 결국 자신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부정 부패와 불로소득으로 부를 누리는 사람은 호화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에 울화가 치미는 것입니다. 그 감정이 심화되면 사회적 파괴 행위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작가 H G 웰스가 쓴 '타임 머신' 이란 가상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는 일자리란 것이 아예 없는, 그래서 아무도 일할 필요가 없는 세계가 펼쳐집니다.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것은 '옐로이' 라는 종족입니다. 그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아하고 나태한 생활만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얼마후 주인공은 그들과 유리된 지하 세계에는 '몰로크' 라는 노예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옐로이 족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생산합니다. 그러나 일하는 것을 운명처럼 생각하며 살아가던 몰로크족은 옐로이족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처절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굶주리게 되자 연하고 방어력이 전혀 없는 옐로이족들을 가
축처럼 잡아먹는 것입니다. IMF 체제하에서 우리 사회의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실업자는 자산규모가 5천만 원 이하입니다.(46.4%) 분유 값이 없어 절도를 하는 등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는데 가진 자들의 오만은 역겨울 것입니다. 고급 유흥음식점과 골프장은 만원이며 고속도로 행락 차량 정체현상을 보면 법과 도덕을 거역하고 파괴적 집단행동을 초래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유럽이 많은 실업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사회가 버틸
수 있는 것은 함께 사는 복지 정책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실업자에게 다가 오는 견딜 수 없는 고독감은 결국 자신의 생에 맞침표를 찍던지, 파괴적인 자아 표출을 통해 사회 질서를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홀로 있다는 고독감은 무서운 것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소설가 헤밍웨이는 사냥총으로 자살하기 직전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지고 전류가 흐르지 않는 텅빈 전구처럼 고독하다." 결국 이런 고독감과 절망감이 그를 자살의 비극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소설 '25시'를 써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기우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독이다. 어떠한 공포라도 함께 겪는 사람이 있으면 견디어낼 수 있으나, 고독은 죽음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차제에 홀로가 아니다는 사회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실직을 당한 사람도 직업이라는 의식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직업이란 인생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얼마
든지 삶의 과정 속에서 그 수단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직장과 직업을 절대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직
을 제 2의 인생 출발의 기회로 전환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지체의식을 가지고 서로의 아픔을 안아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체워주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이 늘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홀로 2백 여만명을 인도하여야 할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 목사/9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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