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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기도실의 피뢰침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1057 추천수:2 218.147.218.173
2026-03-15 13:41:36

지하 기도실의 피뢰침

내 등에는 아직도 세 줄이 솟아 있다. 어릴 적 아버지 혁대가 지나가던 자리다.

낮의 아버지는 설교자였다. 강단에서는 꼭 울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면 권사들은 따라 울었고, 장로들은 아멘을 길게 뽑았다. 새신자 앞에서는 누구보다 허리를 깊이 숙였고, 장례식장에서는 상주 손을 오래 잡아 주었다.

우리 가족은 교회 교육관 뒤편에 딸린 낡은 사택에서 살았다. 내가 잘못을 하면 아버지는 늘 나를 지하 기도실로 끌고 내려갔다. 겉으로는 회개하고 기도해라였지만, 문이 잠기는 순간 그곳은 기도실이 아니라 감옥이 되었다.

어머니는 오래 앓다가 방 안에 누운 채 작아져 갔다. 집 안에서 제일 건강한 사람은 늘 아버지였고, 제일 무서운 사람도 아버지였다. 내게 하나님은 지하 기도실 천장처럼 낮고 축축한 분이었다. 불러도 소리만 울리고,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교회에는 덕구 아저씨가 있었다. 관리집사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잡일꾼에 가까웠다.

말은 몇 마디밖에 못 했고, 누가 시키면 웃으며 했다. 마당을 쓸고, 보일러실을 보고, 주보 여백에 색연필로 사람 얼굴과 십자가를 그렸다. 가끔 짧은 글씨도 적었다. ‘춥다.’ ‘배고프다.’ ‘감사함.’

교인들은 그를 보며 참 순하지라고 했고, 아버지는 불쌍한 영혼 하나를 교회가 품은 거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제일 싫었다. 품기는 무슨. 공짜로 부려 먹는 거지.

아버지가 내 머리채를 잡아 지하로 끌고 내려가는 밤이면, 문밖에서는 늘 빗자루 끄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그리고 거의 늘 그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혁대를 허리에서 빼는 순간쯤 되면 위층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진 날도 있었고, 강대상 화분이 엎어진 날도 있었다. 한 번은 주차장에 세워 둔 아버지 차 유리가 금이 갔다.

저 인간이 또 무슨 짓을 했어!”

아버지는 욕을 퍼부으며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나는 그 짧은 틈에 입술의 피를 닦고 어둠 속으로 기어 나왔다.

잠시 뒤 덕구 아저씨가 왔다. 대개 맞은 얼굴로 왔다. 입술이 터져 있거나 뺨이 부어 있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박하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여름이면 녹아서 종이에 들러붙은 사탕이었다. 나는 그 손을 밀쳐 냈다.

꺼져. 보고만 있었잖아.”

아저씨는 입을 달싹이다가, 말 대신 웃었다. 그 웃음이 나는 더 싫었다.

열여덟 되던 해, 나는 집을 나갔다. 담을 넘기 직전 뒤를 봤다. 덕구 아저씨가 마당 끝에 서 있었다. 빗자루를 든 채, 못 박힌 사람처럼. 덕구 아저씨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당신도 똑같아.”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십오 년 뒤, 경찰서 교통조사계에서 전화가 왔다. 뺑소니 사망자 유품에서 내 이름과 옛 교회 주소가 적힌 메모가 나왔고 메모에는 그 돈을 꼭 아가씨에게 주라고 써 놓았다는 것이었다. 가족은 없고, 연고 확인차 연락한다 했다.

상자 안에는 통장 하나, 스케치북 하나, 메모 몇 장이 들어 있었다. 통장 잔액은 삼십이만 사천 원쯤 되었다. 형사는 검안 결과를 덧붙였다. “예전에 크게 부러졌다 붙은 자리가 많더군요. 갈비뼈, 쇄골, 정강이. 한두 번 얻어맞은 몸이 아니었어요.” 나는 대꾸하지 않고 스케치북을 펼쳤다. 검은 막대기를 든 큰 남자와 우는 아이. 깨진 창문. 뒤집힌 화분. 금 간 차 유리. 넘어진 의자. 그리고 덕구 아저씨 몸 위에만 그어진 빨간 X.

모든 장면은 내가 기억하는 밤들과 정확히 겹쳤다. 그제야 알았다.

그는 문밖에서 비질만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내 비명이 들릴 때마다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아버지가 아끼는 것을 일부러 망가뜨렸다. 분노가 내게 닿기 전에, 그는 늘 그 사이에 서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담벼락과 달아나는 긴 머리 소녀가 있었다. 그 앞에 비스듬히 선 차 한 대. 바퀴 앞에 쓰러진 사람 하나. 오른쪽 다리 위에 진하게 그어진 빨간 X.

열여덟 살 그 밤, 내가 모르는 사이 아버지 차는 끝내 골목을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상자 밑에서 쪽지 하나가 더 나왔다.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아가씨는 잘 갔을 것임잘 살고 있을 것임.’

나는 경찰서를 나와 비 오는 계단에 한참 서 있었다. 겨울비가 통장 비닐을 두드렸다. 삼십이만 사천 원. 누군가에겐 우스운 돈일지 몰랐다. 그런데 내게는 한 사람이 평생 품고 있다가 끝내 건네지 못한 마음 같았다. 나는 통장을 가슴에 넣고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렸다. 세 줄이 손끝에 닿았다. 흉터라고만 생각했던 그 자리가, 그날은 처음으로 하늘의 벼락을 누군가 막아선 피뢰침처럼 만져졌다.

-김필곤 콩트집 <하늘 바구니 중>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6.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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