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신부님이 수녀 두 명과 함께 차를 탔습니다. 오른쪽 수녀는 아름다웠고, 왼쪽에 앉은 수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차가 왼쪽으로 기울어질 때에는 신부님이 “주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질 때에는 “주여,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신앙인들을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교를 진학하고, 직업과 배우자를 선택하는 등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드러내 주신 생각이 있고 아직 드러내 주지 않은 생각이 있습니다. 드러내 주신 하나님의 뜻은 객관적인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의 원리대로 선택하면 됩니다. 굶주린 사람이 길거리를 가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서 그것을 먹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분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신5:19)”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아무리 배가 고파고 먹지 않으면 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 옷을 벗고 자신을 유혹한다고 해도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음하지 말지니라(신5:18)”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말씀을 이어령 비어령식으로 자기 편리한대로 해석하고 인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실연을 당했습니다. 자살을 결심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지 기도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성경을 펼친 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데 “유다가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라(마27:5)”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억울해 다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눅10:37)”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년은 “이럴 수 있나? 하나님도 너무하시지?”라고 다시 기도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거기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머뭇 하려느냐?”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 안 됩니다. “살인하지 말라(출20:13)”라는 말씀이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해치는 것도 살인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객관적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이 성경을 읽어 보면 혹은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지도자의 조언을 들으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보여주지 않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녀를 진학을 시키는데 A대학에 보낼까 B대학에 보낼까라는 답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 말씀의 원리에 따라 선택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기독교 신앙인이 아무리 앞길이 밝은 전공이 있다할지라도 이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선택이든지 성경에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 있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악을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선악이 분명하지 않은 것을 선택할 때는 우선 기도하여 보여주시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유대인들이 먹지 않는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내려 보내면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시아 지역으로 가려하는 바울에게 마게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통해 유럽 선교의 길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기도하면 내주 하시는 성령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인도하시고 상황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나기로 결정할 때 야곱은 상황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였습니다(창31:1-12). 물론 이런 상황의 변화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요나는 욥바에 갔을 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어 타고 갔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맞다고 해도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고 건전한 이성적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5층에서 떨어지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비이성적, 비합리적인 정신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성을 초월하고 합리를 초월한 것이지만 비합리, 비이성으로 우기는 맹신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는 건전한 상식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질병의 징후가 있을 때면 의사에게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을 할 때 신앙관, 가치관, 세계관, 경제관이 맞은 사람과 결혼을 고려하는 것이나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의 능력과 취향, 재능과 경제 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상식 수준에 맞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도 잘 모르는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지만 신앙인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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