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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끈 붙들기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5193 추천수:3 112.168.96.218
2018-09-09 08:07:07

희망의 끈 붙들기

 

모 일간지에 "나의 미래에 내 집은 없다" 절망하는 2030이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한 때 언론은 청년들에게 연애도, 결혼도, 인간관계도, 출산도, 내 집도 포기하는 세대라고 청년들에게 큰 명찰을 달아 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돈과 연관시켜 자조적 패배주의의 명찰을 청년들에게 달아주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은 가슴속에 또 다른 희망이라는 에너지를 불어넣고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망이라는 생명의 끈을 붙들고 살고 있습니다. 파산이나 실직, 질병이나 사고 등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의 끈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척수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쓸 수가 없었던 장영희 교수는 평생 희망의 끈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앉지도 못해 누워 있어야만 했고 초등학교 때까지 어머니는 딸을 업고 학교에 다녔답니다. 평생 목발을 의지해야 했지만 희망을 가지고 공부하여 교수가 되었습니다. 9년간 세 차례나 암과 전쟁을 치렀지만 희망으로 일어났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일평생 힘겨운 삶을 사시면서도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삶을 표현한 작품이 조지 와츠의 ‘희망’이라는 그림입니다. 맨발의 여인은 눈과 귀가 천으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도 들리지도 못합니다. 그녀가 들고 있는 현악기 리라도 한 줄만 남아 있습니다. 그녀는 물에 흠씬 젖어 지구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라가 한 줄 남아 있는 것은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남아 있는 것이 희망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희망은 아름답다>라는 시에서 “창은 별이 빛날 때만 창이다./ 희망은 희망을 가질 때만 희망이다./ 창은 길이 보이고 바람이 불 때만 아름답다./ 희망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때만 아름답다.”라고 읊었습니다. 희망은 출구 없는 방에 쏟아지는 한 줄기 빛처럼 고통스런 현실을 견디게 해 주는 끈입니다.

임상심리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이자인 웨인 다이어는 <마음의 습관>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지혜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먼저 “사랑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랑에 집착하면 절망을 낳는다고 합니다. 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만족과 행복의 원천을 다른 사람에게 두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거부당하면 절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신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절망의 동조자가 되지 마라”고 말합니다. 늘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담고, 원인이나 이유를 따지고, 상처를 되살리는 말을 하면서 고통의 감정을 곱씹는 것은 그 순간의 희망까지도 앗아갈 뿐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고통의 한가운데에서도 축복을 찾아라”라는 것입니다. 심란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과거의 쓰라린 상처들이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던 경험들을 떠올려보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영원한 낙관주의자가 되는 노하우를 터득하라”는 것입니다. 음울하고 침체된 분위기에서도 지나칠 만큼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가 “희망을 물고 늘어져라”라는 것입니다.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희망이라는 뼈다귀를 물고 늘어지는 불독같이 되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가 어떤 절망을 낳았든, 어떠한 장애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든, 무조건 희망의 뼈다귀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라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여전히 삶은 살만할 것입니다. 희망이란 암흑처럼 느껴지는 절망적 현실 속에서 인간을 살아남게 하는 생명줄입니다. 칸트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되는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네 가지 물음을 가지고 씨름했습니다. 그중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되는가’라는 물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화두입니다. 칸트는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희망해도 되는가’라고 물음으로써, 희망에는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헛된 희망에 목을 매며 희망고문을 해서는 안 됩니다. 끝없이 목마른 희망의 우물을 파며 평생 목마르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너희는 예언자들이 하는 말을 듣지 말아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예레미야서 23:16 현대인의 성경)”

세상에는 헛된 희망이 있습니다.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시편 62:10).” 재물이 진정한 희망의 종착역은 아닙니다. 신앙인의 진정한 희망의 끈은 하나님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교만하거나 곧 없어질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희망을 두라고 가르치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넘치게 주셔서 누리게 하십니다(딤전6:17).” 하나님께 나올 때 희망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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