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열린말씀 섬기는 언어

섬기는 언어

게시글 검색
피아노 속 어느 과학자가 놓친 것
김필곤목사 (yeolin) 조회수:4634 추천수:2 218.147.218.173
2025-12-14 13:40:29

피아노 속 어느 과학자가 놓친 것

어느 저택의 거실에 웅장한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 내부 아주 작은 틈에서 소인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 중 '과학자'라 불리는 이들이 피아노의 소리를 연구했습니다. 건반이 눌리면 지렛대가 움직이고, 해머가 현을 치며, 그 진동이 공기를 울려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그들은 정확히 밝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똑똑한 학자가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소리의 모든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고로 이 피아노 밖에서 건반을 누르는 '연주자'란 존재는 불필요한 가설입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그 학자의 설명이 너무 완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했다고 해서, 쇼팽의 녹턴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동 원리가 설명되었다고 해서 의도와 주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 시대에 비슷한 선언들을 자주 듣습니다. 뇌과학은 사랑을 호르몬으로 설명하고, 진화생물학은 도덕을 생존전략으로 설명합니다. "이제 신은 필요 없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이런 목소리 앞에서 때로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20세기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그의 논증은 많은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들렸고, 지금도 회자됩니다.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면 신도 원인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얼핏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서로 다른 종류의 존재를 같은 범주에 놓는 오류를 담고 있습니다. 우주는 시간 안에서 시작된 존재입니다. 빅뱅 이론이 말하듯, 시공간 자체가 한 시점에서 생겨났습니다. 반면 고전적 유신론에서 신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한 존재로 이해됩니다. 시간 밖에 계신 분께 "그 이전 원인"을 묻는 것은 범주 오류입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는 원칙이 신에게까지 자동으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피아노는 제작자가 필요하지만, 피아니스트 자신은 피아노의 부품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러셀은 예수님의 도덕성에도 의문을 제기했습니다특히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괴팍한 성격"의 표현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본문은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전통적 해석은 이 사건을 예언적 상징 행위로 봅니다. 당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했고, 열매 없는 나무는 형식만 남은 종교를 나타냈다는 것이지요. 마가복음이 이 사건을 성전 정화 기사와 함께 배치한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해석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건을 문맥과 분리해서 판단하는 것의 위험성입니다.

그는 또한 말했습니다. "사랑의 신이 어떻게 지옥을 만들 수 있는가?" 기독교 신학은 이에 대해 다양한 답변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자유를 존중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그분을 거부할 자유도 포함됩니다. C.S. 루이스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지옥의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끝까지 "내 뜻대로 살겠다"고 고집하는 이들의 선택을 강제로 뒤집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악과 고통의 문제는 여전히 깊은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랑과 지옥"이 논리적으로 양립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러셀은 종교가 공포에서 비롯되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죽음과 미지의 세계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어떤 신념의 심리적 기원이 그 신념의 진위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두려워서 구조요원을 찾는다고 해서, 구조요원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탁월하게 답합니다.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명합니다. 하지만 ""라는 질문 앞에서는 침묵합니다. 왜 우주가 존재하는지, 왜 무()가 아닌 유()인지, 왜 이 특정한 법칙들이 작동하는지는 과학의 영역 밖입니다. 신앙은 그 ""에 대한 하나의 답변입니다. 증명할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옹호 가능한 답변입니다.

피아노 속 과학자들은 모든 메커니즘을 밝혔지만, 정작 음악의 의미를 놓쳤습니다. 그것은 연주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연주자가 그들의 세계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피아노 속 과학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눈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때로 그런 눈이 필요합니다. 원리만 보는 눈이 아니라 의미를 볼 수 있는 눈, 메커니즘만 추적하는 귀가 아니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 말입니다. 그 눈과 귀를 여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1:20).

섬기는 언어/열린교회/김필곤목사//2025.12.14.
 
SNS 공유

댓글[0]

열기 닫기

top